북한이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 계획을 추진해왔음을 시인함으로써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이 제네바 합의에 의해 동결된 핵시설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비밀리에 수입한 원심분리기로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핵분열 물질인 우라늄235가 20% 이상일 경우 고농축 우라늄이라 하는데 핵무기를 만들려면 우라늄235가 90% 이상이어야 한다. 천연 우라늄의 구성은 우라늄235가 0.7%이고 나머지는 우라늄238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우라늄235의 비율을 증가시키기 위한 특별한 농축장치가 필요하고 그 방법으로 원심분리법이 널리 이용되고있다.
우라늄 핵무기의 최대 장점은 제조가 단순하며 플루토늄 핵무기의 경우와 달리 폭발시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고농축 우라늄을 얻기 위한 농축과정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1기의 원심분리기를 사용할 경우 250㎾h의 전력으로 우라늄235를 연간 약 30g 생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1㎏의 우라늄을 생산하려면 34기의 원심분리기를 1년간 가동시키면 된다.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타입(gun-type)' 핵무기의 경우 50㎏정도의 우라늄235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1기의 핵무기를 위해서는 1,700여기의 원심분리기를 1년간 가동시켜야 한다.
원심분리기는 수출통제 품목인데다 1기 가격이 20만달러여서 북한이 대량의 원심분리기를 수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90년대 후반 이후 짧은 기간에 우려할 수준의 우라늄235를 생산했을 가능성도 높지 않다. 북한이 우라늄농축을 위해 부분적으로 레이저 농축기술을 이용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하나 이 기술은 아직 세계적으로도 상용화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앞으로 원심분리기를 대량 확보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원심분리기는 1기의 크기가 높이 1∼2m 지름 30㎝ 정도로 큰 공간이 필요 없고, 여기저기 분할 설치할 수 있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탐지하기 어렵다. 그리고 북한이 우라늄235 자체를 대량으로 수입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의 제네바 합의로는 지금의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제네바 합의를 개정할 것을 제의한다. 먼저, 북한은 핵사찰 즉각 수용을 발표하고 과거핵 및 현재핵 규명에 적극 협조한다. 이에 대한 인센티브로서 미국은 북한에 상당량의 전력(연간 50만㎾ 발전설비 용량 정도)을 경수로 1호기 완공 전까지 제공한다. 이후에도 경수로사업은 중단 없이 계속됨을, 그리고 제네바 합의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북한을 핵무기로 위협 또는 공격하지 않는다고 미국은 보장하여야 한다.
50만㎾의 전력공급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서는 대북한 전력지원에 긍정적인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경수로 비용의 70%를 부담하면서 북한에 전력까지 지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지만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우선 KEDO 경수로로부터 국내 전력망에의 송전선 건설 비용을 우리가 지불한다는 전제 아래, 경수로 2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장기간 적절한 가격으로 우리가 수입하는 방안이다. 다음, 북한의 전력 인프라, 즉 전력망 개선 및 중소형 발전설비 시장에 국내 민간기업을 진출 시키는 방안이다. 또한 북한 흑연로 및 재처리 시설의 해체 작업에 있어서 우리 민간기업을 참여케 하는 것이다. 핵시설 해체 작업은 세계적으로 유망한 사업 분야다.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이 사실이라면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북한은 신뢰하기 힘든 국가라는 이미지를 새겨준 셈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먼저 이번 파문을 수습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북한의 대응에 따라 이번 파문은 오히려 북미간 관계를 정상화 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강 정 민 핵공학박사·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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