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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책]공자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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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책]공자 "논어"

입력
2002.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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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콩자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선배 한 분이 있었다. 그 분을 직접 보기 전에는 얼굴이 까맣게 생겼나 했다가 막상 실물을 보니 그렇지도 않아서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공자반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시골에서 '논어'나 '맹자' 등 유교경전을 배우고 대학에 왔기 때문에 그 경전을 줄줄 외울 뿐만 아니라 말마다 공자를 들먹이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하였다.처음엔 그 별명이 칭찬인지 흉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분명 칭찬이 아니었다. 촌스럽고 고루하며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유교에 관한 당시의 일반적 통념이었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인식은 졸업 후 오히려 심해지면 심해졌지 줄어들진 않았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점을 모두 유교 탓으로 돌리는 세태에 이의가 없었다.

이런 의식에 일대 전환을 가져 온 것이 30대 중반에 만난 '논어' 원전이었다. 대학 때는 원전으로 읽을 능력이 없었고 도무지 흥미를 못 느끼면서도 좀 알아두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번역본을 억지로 뒤적거리다 말았다.

원전으로 '논어'를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 사람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 곳곳에서 뿜어 나오는 인간애의 향기에 매료되었다. 한마디로 휴머니즘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고 비로소 동양의 지혜라는 말이 실감났다.

어릴 적 부모님의 가르침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 즉 인륜이란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눈을 뜨는 기분이었고 지식보다는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10여년의 전업주부 생활 끝에 지적허기증에 시달리며 갈증을 느끼던 때였기에 그 감명이 더욱 컸는지도 모른다. 텅 빈 그릇이 공명이 크듯이···.

그리고는 대학원에 진학하자 주저 없이 유교국가 조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였다.

논어의 정신을 깨닫고 나자 제국주의가 뿌리째 뽑아놓은 조선왕조의 실체가 눈앞에 다가왔고 조선 문화의 고유성에 대해서도 눈을 떴다. 그 정신을 체득하고 실천한 선비들에 대한 연구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조선왕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자 제국주의적 식민사관의 허구를 깨는 작업이 되었다. 모두 '논어'를 읽고 나서 일어난 일이다.

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규장각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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