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시험시간에 커닝하는 친구들을 불쌍히 여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커닝이란 F 학점을 면하기 위한 비상 수단이었다. 진급과 졸업을 제때에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을 테니 그럴 만도 하다고 여겼다. 학점이 잘 나온 것을 수치로 여기던 낭만파도 있었다. 시험 때만 되면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달달 외우는 학생들을 그들은 공부벌레라고 경멸했다. 시험공부보다 관심분야 독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자랑이었다.■ 그런 기성세대의 눈에 요즘 대학가 풍조는 너무 이상해 보인다. 커닝 문제가 신문 방송 뉴스거리가 되는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올봄 일부 대학에서 학교사랑 운동으로 커닝하지 않기 서명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2학기 들어서는 서울지검이 커닝행위로 적발된 대학생 7명을 벌금 100만∼150만원에 약식 기소한 사건이 일어나더니, 중간고사가 치러진 이 달 들어서는 여러 대학에서 총학생회 주관의 커닝 추방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 커닝 수법도 너무 놀라워 기성세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투명한 OHP 필름이나 고해상도 축소복사기를 이용한 커닝 페이퍼는 고전적 수법의 현대화이고, 휴대폰이나 PDA 같은 IT 시대 휴대용품이 이용되기도 한다. 학과목의 특성상 컴퓨터 이용이 허용되는 시험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커닝도 적발된다. 먼저 나간 학생이 휴대폰 문자 메시지나 채팅을 통해 정답을 알려주는 수법이다. 축소 페이퍼를 볼펜 속에 내장해 버튼으로 회전시키는 지능형도 있다.
■ 그토록 커닝이 만연하는 이유가 서글프다. 커닝을 하지 않으면 손해를 각오해야 할 정도라 한다. 장학금을 받을 목적으로 그러는 학생은 드물고, 취업을 위해서라니 무한경쟁 시대의 반영인가. 커닝을 감독해야 할 교수가 말하는 '커닝을 못 막을 이유'는 더욱 서글프다. 한 서울대 교수는 신문 기고에서 "우리 사회는 커닝을 묵인하고 장려하는데, 그런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가 과연 학생들을 손가락질할 수 있는가" 하는 자격지심 때문에 그것을 질책할 자신이 없다고 썼다.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체해야 하는 슬픔이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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