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高宗錫·43) 한국일보 편집위원에게는 개인주의자, 자유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자, 자유주의자는 숙명적으로 소수자다. 유난히 심한 편가르기 속에서 그는 어느 편에도 쉽게 속하지 못한 채 회색인의 위태로운 길을 서성일 수밖에 없다.최근 동시에 나온 그의 에세이집 '서얼단상'과 '자유의 무늬'(개마고원 발행)는 개인주의자로서, 자유주의자로서 그리고 소수자로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세상 관찰기이다. 한국의 정치부터 언론, 글쓰기, 문학 그리고 연예인에 이르는 다양한 소재의 글 모음이다. 한국일보를 포함, 몇몇 언론에 기고한 글과 처음으로 쓴 글을 모아 편의상 두 권으로 냈지만 소수자의 옹호라는 주제가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한 권의 제목이 '서얼단상'이라는 사실은 그런 주제를 응축적으로 보여준다.
"서얼은 조선 신분제 사회에나 맞는 용어이지만 책에서 저는 서얼을 적자가 아닌 서자, 정통이 아닌 곁가지, 다수가 아닌 소수자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서얼은 편견과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이고 장애인이고 경제적 약자이고 외국인 노동자고 동성애자가 됩니다. 이 책은 그런 소수자에 대한 옹호 내지는 배려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판 서얼은 지역적으로는 전라도 사람이다. '서얼단상'에 '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라는 부제를 단 것도 전라도 사람을 소수파의 상징어로 보고 그 자신 소수 집단에 눈길을 주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를 전라도 사람이라 하기 힘들다. 아버지가 광주 사람이고, 어머니가 전주 사람이나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데도 그가 전라도 사람을 굳이 자처하는 데는 원적지보다는 소수자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가 더 작동했다.
그가 보기에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폭력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 뚜렷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 그런데도 짙은 안개처럼 드리워진 채 언제 걷힐 지 모른다. "법으로도, 제도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소할 방법 역시 마땅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몸담고 있는 언론의 책임이 특히 크다고 그는 생각한다. 사회 담론을 형성하는 언론이 소수파를 배려하기는커녕 소수파에 대한 편견을 확대시키는데 앞장 서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증오의 문화를 부추기는 일이 많습니다. 그것도 이성적인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지역주의를 실제 이상으로 부풀리고 재생산하는 것은 물론 이념적 소수파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상당한 정도의 우파가 아니면 언제든지 공격을 가합니다. 언론이 이념의 폭을 정하고 소수파의 목소리를 제거하면 기형적인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소수파를 무시하고 언론은 그것을 부채질하는 현상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개인을 개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지요. 어느 지역 사람이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즉 어디에 속한지를 두고 그 사람을 규정합니다. 개인을 집단의 일원으로 보는 것이지요."
문제는 결국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부재다.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저항은 맹렬하다. "집단에는 이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나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다른 개인의 자유도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다수결주의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어떻게든 사회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다수결주의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 생각이 옳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히틀러도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해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히틀러가 옳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국가가 개인에 일절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약육강식이 횡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목소리는 늘 위태롭다. "한국 사회는 전체적으로는 오른쪽에 있고, 그 반대쪽에도 일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집단을 위해, 전체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양쪽 모두에 존재합니다. 그 사이의 공간은 매우 좁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 서있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그 자신이 서얼이고 소수자란 이야기이다. '자유의 무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이따금 내가 세속도시에서 유토피아로 밀파된 스파이이거나 유토피아에서 세속도시로 파견된 스파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스파이에게 영예가 주어지는 법은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불안하고 누추한 회색지대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편치 않은 소수자의 길, 그러나 그는 그 길을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 고종석은 누구
고종석 한국일보 편집위원의 또 다른 별명은 '에세이스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독특하고 명징한 문장 때문이다.
이 두 권의 책에는 한국어에 대한 그의 생각이 많이 들어있다. 그는 열 일곱살 때 외솔 최현배의 '우리 말본'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말에 대해 생각하고 궁리하는 것도 공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국어학을 공부할 생각을 했고 대학(성균관대 법학과)을 졸업하고 코리아타임스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중 서울대 언어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1996년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도 언어학을 공부했다.
한때 국어사전 편찬자의 꿈을 갖기도 했던 그는 한국어가 걸어온 길과, 한국어의 문장 등을 탐구한 '국어의 풍경들', 한글 자음과 모음 하나하나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를 모은 에세이집 '언문세설' 등을 통해 한국어에 대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글의 형식에 매우 집착한다. 아무리 좋은 주장이라도 좋은 문장 안에 담겨 있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어법에 맞고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글이다.
하지만 주어를 굳이 명시하고 쉼표를 많이 넣기 때문에 그의 문장이 번역문체라는 지적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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