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심으로 그것을 쫓기로 했다. 쫓기 위해 진심으로 달아나기로 했다. 시집 한 권과,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방을 뛰쳐나갔다." 소설의 처음에서 화자는 가출하고 마지막에서 화자는 다시 가출한다. 처음과 끝의 가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57·사진)의 장편소설 '도망치는 자의 노래'(전2권·현대문학북스 발행)가 나왔다. 마루야마는 일본 북부 산악지역 오오마치에 살면서 30년 넘게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다. 집단과의 타협은 자유의 말살을 의미한다는 게 칩거의 변이다. 매일 머리를 삭발하면서 문학의 각오를 다지는 이 기이한 작가의 새 소설은 지극히 무정부주의적이다.
아버지가 죽고 가업을 이어야 하는 화자는 억압과 속박을 벗어나고자 고향인 산골 마을에서 도망친다. 영화판을 기웃거리고 막노동꾼으로 일하기도 하다가 문학에 발을 들여놓는 과정은 마루야마 자신이 작가가 되기까지의 행로와 닮았다. 누나의 간청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 뿐이다.
실종됐다던 누나의 남편이 돌아왔다. 자유를 찾아 도망치려는 꿈을 버리지 않은 화자에게 자형은 이상형으로 비쳐진다. 어느날 벼락 같은 소식이 들린다. 한 사내가 천황과 그 일행에게 폭탄을 던졌다는 것. 화자는 자신이 계획한 서사시 '도망치는 자의 노래'의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그 남자가 어쩌면 자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고향은 평온했지만 서서히 죽어가는 곳이었다. 이 쇠락의 마을에서 일본 우익 정치인들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 나오고, 진정한 자유를 향한 갈망이 나온다.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을 통해 일본인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드러내고 싶다고 했다. 처음 집을 나온 화자는 관념에 의존하는 유약한 존재였다. 이 화자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이 얼마나 고요한 지옥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견고한 국가의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화자가 집을 나왔을 때 비로소 반항의 노래가 시작됐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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