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0월26일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74세로 작고했다. 크레타섬의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난 그는 아테네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대학으로 유학해 앙리 베르그송 밑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카잔차키스의 철학은 니체와 스승 베르그송의 영향 아래서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와 기독교 같은 이질적 세계관들의 통합을 시도했다.카잔차키스는 마지막 거주지였던 독일을 포함해 생애의 절반을 프랑스, 소련 등 외국에서 보냈다. 그는 또 유럽 전역과 중국, 일본까지 돌아다닌 열정적 여행가이기도 했다. 생애의 3분의2가 지나도록 주로 철학 작업에 몰두했던 카잔차키스는 55세에 서사시 '오뒤세이아'를 발표하며 시단에 이름을 들이밀었고, 63세에 장편 '그리스인 조르바'를 발표하며 소설가가 되었다. 베르그송의 '생의 도약' 개념을 조르바라는 실존 인물 속에 투사한 이 작품으로 카잔차키스는 단번에 20세기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리스 내무부 장관과 유네스코의 고전번역 부장을 지내며 그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카잔차키스는 교회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예수의 삶을 극히 세속적인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그리스도의마지막 유혹'을 비롯해 그의 만년 저작들은 자주 교회의 금서 목록에 올랐고, 마침내 그리스 정교회는 그를 파문했다.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의한 대목. "막달레나는 벌떡 일어나 화롯불과 문 사이를 서성거렸다. 신(神)이 원수야,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신 말이야. 신은 아무 때나 아무 데나 들어오지. 신은 사악하고 질투심이 많아. 신은 사람을 도무지 행복하게 놔두려고 하질 않지. 그녀는 문 뒤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하늘이 울부짖고 있었다. 회오리바람이 일어 마당의 석류알들이 서로 부딪치며 으깨지려는 참이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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