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막판 진통 끝에 타결됨에 따라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FTA시대를 맞게 됐다. 현재 논의중인 한·일, 한·멕시코 등 FTA도 추진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그러나 3년여의 협상을 통해 가장 민감한 부문인 농산물에서 칠레측의 양보를 상당부분 얻어내는 성과를 거뒀지만, 막판에 금융시장 개방 쟁점을 둘러싸고 드러난 정부의 허술한 협상력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됐다.협정의 타결로 우리 경제는 당장 내년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의 주요 수출품인 공산품의 66%(금액기준)가 당장 무관세로 칠레 시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특히 대 칠레 수출의 36%를 차지하는 자동차가 7%의 관세를 물지 않게 됨에 따라 가격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만3,364대의 승용차를 수출, 칠레 수입차 시장에서 일본(36%)에 이어 2위(23.8%)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칠레는 이미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인접국과 자동차 무관세협정을 맺었고, 유럽연합(EU)과의 FTA도 내년부터 발효될 예정이어서 우리나라 자동차가 현행 관세를 물고 들어갈 경우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전자제품 중에는 휴대폰 수출이 크게 늘어나 현재 7.1%인 시장 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칠레가 향후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방식의 휴대폰 서비스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이어서 더욱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수출증대 효과와 관련, KOTRA는 FTA 체결로 우리나라의 대 칠레 수출이 단기적으로 5∼10%, 장기적으로 20%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행도 수출이 연간 3,000만 달러, 수입이 1,000만 달러 증가해 2,000만 달러의 무역수지 개선 효과가 생길 것으로 예측했다. 무역협회는대 칠레 수출은 연간 1억달러 증가하고, 수입은 4,000만달러 증가해 무역수지는 연간 6,000만달러 가량 개선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농업부문에서는 칠레산 수입농산물의 시장잠식을 우려한 농민들의 반발이 극심할 전망이다. 물론 이번 협상에서 과일 등 주요 농산물의 상당부분이 관세철폐 유예 또는 협정 예외 대상으로 빠져 농업 피해는 당초 예상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방일정이 확정된 만큼 그 사이에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관련 산업의 피해는 피할 수 없다. 더구나 한번 물꼬가 트인 개방의 파고는 앞으로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게 농민들의 걱정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FTA 추진에 앞서 농업 등 국내 취약산업에 대한 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지원 대책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낙균 KIEP 무역투자실장은 "미국처럼 FTA 체결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산업을 지원하고 구조조정을 돕는 방안을 시급히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농산물 "특별세이프가드" 도입
한·칠레 FTA는 상호 시장개방 양허안을 비롯해 투자 및 서비스, 무역규범, 위생검역 및 기술장벽, 원산지 표시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시장접근 분야 양국은 관세철폐를 원칙으로 하되 당장 국내 산업의 영향이 큰 품목들에 대해서는 협정의 예외로 하거나 관세철폐를 상당기간 유예하는데 합의했다. 한국은 농산물에 대해, 칠레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공산품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예외와 유예를 두었다.
우리나라는 칠레산 농산물 가운데 쌀 사과 배 3개 품목을 협정의 예외로 했다. 소고기 닭고기 자두 감귤 등에 대해서는 일정량의 무관세 수입쿼터(TRQ)를 허용하고, 추가 개방여부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이후 논의키로 했다. 협정 발효 즉시 관세를 철폐하기로 한 품목은 종우(種牛) 종돈(種豚) 사탕수수 사료첨가제 등 국내 피해가 적은 것들이다. 포도는 당초 예상대로 국내 비생산기(11∼4월)에는 현행 관세를 단계적으로 낮춰 10년 후 무관세로 가고, 국내 생산기에는 현행관세를 유지하는 '계절관세'를 적용키로 했다. 수산물은 칠레측이 전 품목을 즉시 무관세화한 데 비해 우리는 국내 어업에 영향이 있는 품목에 대해 5∼10년후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비 농산물은 우리나라의 최대 수입품목인 전기동(銅)을 제외한 모든 품목의 관세를 즉시 철폐키로 했다. 전기동은 7년뒤 철폐키로 합의됐다.
칠레측은 자국 시장의 각각 40%, 70%를 점유하고 있는 한국산 냉장고와 세탁기를 협정의 예외로 했다.
특별세이프가드 도입 협정 발효 후 칠레산 농산물의 수입급증으로 인한 국내 농업 피해를 막기 위해 긴급 수입제한조치(특별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특별세이프가드는 국내산업피해 조사 절차 없이 발동할 수 있고 기간에 제한이 없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의한 세이프가드보다 훨씬 강력하다.
금융 투자개방 제외 막판에 협상을 결렬 위기로 몰았던 금융기관 투자개방은 이번 협정에서 제외하되, 4년뒤 재론키로 최종 타협했다. 협상결과를 발표한 외교통상부 이성주 다자통상국장은 "어제 저녁에 칠레 수석대표와 통화해 양보가능성을 확인, 재경부가 칠레 재무부와 실무 협상을 통해 최종 합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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