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울음소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아기가 왜 우는지 이유를 알려주는 울음번역기가 등장했다고 한다. 스페인의 한 전자공학자가 자기 아들 울음소리에 당황했던 경험을 살려 만든 거라는데 아기의 배고픔, 피곤, 불편함 등을 98%의 정확도로 분석해 낸단다.큰 애를 낳아 집에 데려온 첫날밤, 밤새도록 우는 아이를 들여다보며 남편과 어쩔줄 몰라하던 기억도 나고, 한참전에 본 ‘아기 천재’(베이비 지니어스)라는 영화 장면들도 떠올랐다. 한 악덕 여성기업가가 아기들을 데려다 놓고 그들만의 언어를 해독, 큰 돈을 벌려는 음모를 꾸미는데 천재 아기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들을 일망타진한다는, 약간은 황당한 줄거리.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못 알아듣는게 과연 아기들 울음이나 옹알이뿐일까. 멀쩡한 한국말을, 사랑하는 가족끼리 이해 못하는 웃지못할 일은 우리 일상속에서 매일 벌어진다.
동생과의 말다툼을 보다못해 좀 심하게 야단을 쳤더니 큰 애는 며칠째 입이 나와 있다. 꼭 필요한 말만 몇 마디 건네더니 갑자기 다가와 입안이 헐었다며 보여준다. 무슨 의미일까. ‘고3인 나에게, 엄마 이럴 수 있수?’ 혹은 ‘엄마의 동생 편애 때문에 입안이 헐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로 번역하면 될까.
성별이 다른 남편과 겪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더 크다. 친구의 남편 흉 가운데 단골메뉴는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것.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하면 정색을 하고 “그런 직장은 당장 그만두고 헤드헌터한테 이력서를 보내라”고 충고한단다. 친구가 원한 건 그저 어깨를 두드리며 건네주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인데….
이런 사정은 어떤 남녀간이나 비슷한 것 같다. 원래 여자는 금성에서 왔고, 남자는 화성에서 왔다는, 그래서 서로 의사소통하는 법을 열심히 배워야한다는 책이 몇 년째 베스트셀러 목록에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전문가들은 채팅에 빠진 마누라나,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 모두 가족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난 당신과 얘기하고 싶어요.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나와 함께 대화해 주세요’가 채팅 부인의 절박한 심정이라면 게임 아이는 ‘엄마 아빠 제발 저에게 관심을 가져 주세요. 저도 게임이 좋아서 이러는 건 아니라구요’라는 호恬?하고 있다는 것.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아이 울음 번역기가 아니라 가족 대화 번역기인 것 같다. 누가 이걸 발명하면 큰 돈 벌텐데….
이덕규(자유기고가·)기자 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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