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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미군 매매춘 금지령… 기지촌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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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미군 매매춘 금지령… 기지촌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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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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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둠이 깔리고 기지촌의 밤을 밝히는 네온사인이 번쩍이기 시작한 22일 오후 8시 경기 평택군 팽성읍 안정리 M클럽. '외국인 전용'이라는 간판이 버젓하지만 한국손님 입장을 제지하는 곳은 없었다. "요즘은 한창 때에 비하면 손님이 절반도 안돼"라고 푸념한 업소 주인은 "평일엔 미국인보다 한국인이 오히려 더 많이 찾는다"라며 구석 자리로 안내했다. 기자가 머문 2시간 동안 이 업소의 소님은 10여명에 불과했지만 대부분은 한국인이었고 두서너명의 미군은 20여분 동안 당구를 치다가 이내 사라졌다. 같은 시각 미 보병2사단 사병들의 '2차 장소'로 알려진 경기 동두천시 광암동 캠프 호비 앞의 속칭 '턱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필리핀 여성들에 대한 인권침해사건이 불거졌던 이곳은 미군들의 발길이 거의 끊겨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겼다.

■잇단 악재로 된서리 맞은 '기지촌 유흥가'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본국에서의 9·11테러, 필리핀 윤락여성 인권침해 문제 등 악재가 잇달면서 기기촌 유흥업소는 사상 최악의 불경기를 겪고 있다.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 유흥가인 보산동에는 러시아, 필리핀 출신의 여성접대부 190여명, 광암동 '턱거리'에도 60여명이 종사하고 있으나 이는 전성기때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미치는 숫자다.

턱거리의 한국특수관광업협회 광암지부장 최범(崔汎·49)씨는 "단속 지침이 너무 많아 꼭 '찬송가를 틀어 놓고 장사하라'는 것 같다"라고 불평했다. 이 근처에서 6년째 꼬치장사를 해온 한 노점상도 "여자 없이 놀자면 시설이 좋은 영내 주점이 더 낫지 않겠느냐"며 "매매춘 금지령이 미군 손님을 모두 빼앗아갔다"라고 거들었다.

송탄 K-55 공군기지 근처 신장리 일대의 한 노점상도 "야간통행 금지를 30분 앞둔 밤 11시30분께면 미군들로 성황을 이루었는데 요즘은 한산하기 그지 없다"며 "평일, 주말에 관계없이 손님들이 한창 때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단속원들의 평가도 업주들과 별 차이가 없다. 미군 병원 관계자들과 함께 업소 위생검사를 나온 동두천시청 사회복지과 김성곤(金成坤·36)씨는 "예전에는 평일을 기준으로 큰 업소에는 8∼10명, 작은 업소는 5명 정도의 미군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6곳 중 2곳에 미군 1,2명이 있을 뿐"이라며 썰렁한 미군 부대 주변 클럽 분위기를 전했다.

사정이 이처럼 나빠지자 돈벌이를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종업원은 하루 하루를 보내기가 버거울 정도다. 동두천 보산동 B클럽의 러시아 출신 무희 타냐(23)는 "손님이 너무 없어 춤 추는 재미도 사라졌으며 이 상태로라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라며 담배 연기를 내뿜기만 했다.

■몸 사리는 미군과 업주들

기지촌이 파리를 날리는 이유는 9·11테러 1주년을 맞아 미군 당국이 외출외박을 철저하게 통제하기 시작한 데다 필리핀 여성문제까지 터져 매매춘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최근 뉴 호라이즌 데이(New Horizon Day)를 맞아 미군당국은 성매매를 할 경우 1년 동안 영창에 보내고 감봉조치뿐 아니라 불명예제대까지 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수 차례 장병들에게 하달했다. 또 폭스TV등 미 방송사들이 해외주둔 미군들이 제3세계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르포물을 내보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캠프 험프리에 근무하는 카투사 이모(25·병장)씨는 "미군들이 분위기가 험악해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미군과 한국 경찰의 단속도 매서워졌다. '턱거리'의 경우 지난 해 9월 이후 단속된 5건의 매매춘사범 중 3건이 최근 한 달 사이에 적발된 것이다.

■편법영업 고개들어

턱거리 부근 M여관에 손님을 가장해 "미군과 매춘여성이 짝을 이룬 3팀을 재워줄 수 있냐"고 묻자 "문제없다"라는 반응이 곧바로 돌아왔다. 송탄의 K-55 공군기지 일대의 유흥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필리핀 여성을 고용하고 있는 업주들은 한사코 "한국인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나, 열려있는 출입문 틈새로 지켜본 내부는 민망한 모습이었다. 미군들은 옆 자리에 앉은 필리핀 여성과 뒤엉켜 있었고, 필리핀 여종업원도 "외출은 곤란하나, 실내에서는 어떤 행위도 가능하다"라고 서슴지않고 얘기한다.

캠프 케이시 앞 보산동 클럽 골목에서 만난 한 미군은 매매춘이 근절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 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아직도 여자를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 미군은 "토꼬리(턱거리)"라는 말을 수 차례 반복하며, 성행위는 단속이 심한 여관 대신 클럽 내부의 밀실에서 이뤄진다고 자상하게 설명했다. 한국 경찰이나 미군 순찰대가 밤에는 홀, 낮에는 숙소를 점검할 뿐 동시에 2곳을 단속하지 않는 틈새를 노린 편법영업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평택·송탄=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동두천=정상원기자 ornot@hk.co.kr

안형영기자 ahnhy@hk.co.kr

■ 평택 필리핀 접대부

"미안하지만 오늘 밤은 힘들어요. 다음에 꼭 전화해요, 네?"

경기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캠프 험프리 근처 유흥가 M클럽에서 만난 필리핀 여성접대부 랜슬리(가명·26)씨가 기자와 2시간여의 대화가 끝나자 휴대폰 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며 속삭인 말이다. 기자가 "당장 2차를 갈 수 없겠느냐"라고 떠보자 "(한국인) 언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요즘에는 밖에 나가기가 쉽지 않다"며 완곡하게 거부의사를 밝혔다.

업소 주인에 따르면 필리핀 여성과의 클럽 밖 2차 비용은 대략 1인당 15만원선. 하지만 최근 미국 방송을 통해 필리핀 접대부를 상대로 한 매매춘문제가 집중 거론되면서 성매매는 일단 잠복상태다. 이 때문에 덜미를 잡히기 쉬운 야간 외출 대신 낮에 1∼2시간 짬을 내 업소내 밀실에서 매춘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필리핀 마닐라 출신인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의류매장 점원으로 일을 했다. 당시 한 달 수입은 고작 150달러. 이 돈으로는 부모와 동생들의 생활비로 어림없었던 터라 지난해 11월 친구 3명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지촌 클럽에서 번 한 달 수입의 70% 이상을 고향으로 송금하는 그는 매달 단 하루만의 휴일을 갖기 때문에 평택 근처를 벗어날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동석한 남자가 1만원짜리 맥주나 음료수를 주문하면 필리핀 여성 몫으로 떨어지는 돈은 2,000원. 하루 5잔은 업소 주인을 위해 의무적으로 팔아야 되는데, 요즘은 평일에는 2,3잔, 주말에도 7,8잔이 고작이어서 수입이 크게 줄었다. 그러나 그는 한 달 수입이 대략 400달러라고 말해 음료수 대가 외에 또 다른 방법으로 별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한국 남자의 눈매를 무척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는 한국 남자가 많다"는 그의 말로 미뤄 한국인 상대 매춘이 잦다는 것도 추측이 가능했다. 그는 "본명 에레나가 한국인이 발음하기 쉽지 않아 랜슬리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라며 무대 위로 올라가 야한 춤을 선보였다.

/평택=황재락기자 finder@hk.co.kr

■예술·흥행비자 추천제로 바뀌며 외국 윤락녀 급증

주한미군 기지촌을 비롯해 각 유흥·윤락업소에 동남아·러시아 등 외국인 여성들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1999년 예술·흥행(E-6) 비자 발급이 허가제에서 추천제로 바뀌면서부터다. E-6비자는 원래 수익을 목적으로 한 음악·미술 등의 예술활동과 연주·운동경기 등의 활동에 종사하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발급해주는 비자. 그러나 '심사제'가 유명무실해지면서 각종 편법이 동원돼 외국인 예술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국제 인신매매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2001년 E-6비자로 입국한 8,586명 중 6,971명이 여성이며, 이 가운데 90% 이상이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정부가 발급하는 비자 중 유일하게 후천성면역결핍증(HIV) 테스트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에이즈 검사까지 해주면서 외국인 윤락을 방조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비난에 따라 법무부는 최근 E-6비자 발급 신청자에 대해 해당 재외 공관에서 반드시 인터뷰를 하도록 방침을 강화했지만, E-6비자 남발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추천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로 인한 폐해가 근절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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