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나. 아니면 그 사이에 생각이 바뀌었나.꼭 1년 전의 일이다. 추석연휴에 개봉한 '조폭 마누라'가 최단 기간인 5일만에 전국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흥행몰이를 시작하자 영화계와 평자들은 마치 오지 말아야 할 것이 왔고, 한국영화에 무슨 재앙이라도 내린 것처럼 난리를 쳤다.
흔히 말하는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는 논리였다. 비슷한 조폭영화 '친구'의 대성공, 반면 소위 작가주의 영화라고 하는 '고양이를 부탁해' '나비'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흥행에 실패한 상황과 비교해 '조폭 마누라'는 더욱 '나쁜 놈'이 됐다. "웃기면 다라는 식의 막가파 코미디, 조폭영화의 아류작" "다양성이 깨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안이한 발상" 정도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조폭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식상함을 부채질하는 촉매" "한국의 이처럼 질 낮은 코미디에 관객들이 몰린다면 한국영화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한국 액션영화가 급격히 뒷걸음질 치고 있는 조짐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싸구려 영화가 흥행하는 것은 한국영화 장래에 큰 해가 될 것" "영화라는 매체의 위상이 바뀔 것" "홍콩처럼 아류작을 양산해 한국영화가 몰락할 것"이란 극단적인 비난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런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태도였다. 519만명의 관객을 '아무 생각 없이 웃기는 영화 좋아하는 우민(愚民)' 취급을 했다.
공교롭게도 정확하게 1년 뒤, '조폭 마누라' 못지 않게 '가문의 영광'이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0일까지 443만명으로 올해 최고 흥행작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용하다. 더구나 1년이란 시간을 무색케 하는 조폭 코미디 재탕인데 어디에서도 '조폭 마누라'때 들렸던 우려와 비판의 말을 들을 수 없다.
'조폭 마누라' 때 그랬듯 '가문의 영광'의 흥행 성공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대박'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조폭마누라'가 억압적인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통쾌한 반란의 쾌감을 보여주었다면, '가문의 영광'은 우리 사회가 중시하는 가족주의와 학연을 풍자했다. 그렇다고 '가문의 영광'이 '조폭 마누라'에 비해 영화적으로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여전히 아주 안전한 장르와 소재에 기대 "웃기면 그만"이라는 지극히 가벼운 상업영화, 그 이상은 아니다.
한 영화인은 "요즘 한국영화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데 어떤 영화든 크게 흥행하면 좋지 않느냐"고까지 말했다. '아 유 레디?' '성냥팔이소녀의 재림'등 의욕을 갖고 도전한 블록버스터들이 연속 참패를 하는 상황에서 "싫어도 길은 역시 이 길 뿐"이라는 것일까. 혹시 '조폭 마누라'는 힘 없는 영화사(현진영화사)가 만들었으니 3류고, '가문의 영광'은 힘 센 영화사(태원엔터테인먼트)와 투자사(시네마서비스)의 작품이니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한심한 일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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