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그제 국회 정무위에서 국가정보원의 도청 자료에 근거한 것이라며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의 '검찰수사 축소 요구설'을 주장한 것은 충격적이다. 이 위원장은 대학 후배인 대검 정보기획관에게 전화를 건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지금 단계에서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하지만 행여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4,000억원 대출 당시 산업은행 총재로 재직했고, 현재 금융당국의 최고위직에 있는 이 위원장이 검찰에 축소수사를 요구했다는 것은 정치권과 현대의 대북 뒷거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것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위원장의 통화내용이 정확히 밝혀져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 의원 주장의 진위와는 별도로, 그가 확보했다는 기관 도청자료와 유출경위 역시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국가기관이 금융 고위관계자와 검찰 간부의 통화내용을 도청했다는 사실부터가 놀라운 일이다. 도대체 국정원은 무슨 근거로 이들의 통화를 도청했다는 말인가. 현행법은 법원의 영장에 의하지 않고는 일체의 감청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관도청 자료' 라니 국정원이 아직도 국가기관의 간부들 통화나 대화를 불법으로 엿듣는 구시대적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는 말인가. 불법도청도 문제거니와 도청자료가 야당의원의 손에까지 넘어갔다니 아무리 임기 말 누수현상이 심하다고 해도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기강과 규율이 말이 아니다. 검찰과 국정원은 이 위원장의 대화 내용을 상세히 밝히고, 도청자료의 진위여부와 유출경위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정 의원도 확보된 자료가 있다면 공개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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