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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주의적 발상이 아니라 우리학문의 종속성 벗자는것"/1돌맞는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이기상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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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주의적 발상이 아니라 우리학문의 종속성 벗자는것"/1돌맞는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이기상회장

입력
2002.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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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이 거추장스럽다지만 요즘 식으로 다듬어 고친 생활한복은 참 편하지 않습니까. 학문 분야에서도 서양 것을 따라 배우느라 버려두었던 우리 말과 글로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를 분석해 우리 몸에 잘 맞는 이론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27일로 창립 1주년을 맞는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이기상 회장(55·한국외대 철학과 교수·사진)은 이 모임의 취지를 평소 즐겨 입는 생활한복에 비유해 설명했다.

"세계화 시대에 웬 국수주의적 발상이냐"는 눈총도 받았던 이 모임은 1년 새 회원이 170여명에서 260여명으로 늘고, 구성도 인문·사회 중심에서 이공계 예술계 법조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7월에는 모임의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반년간 학술지 '사이'를 창간하고 한글날에는 외국어와 일본식 한자어에 점령당한 학술 용어를 쉽고 정확한 우리 말로 고쳐 쓰려는 노력을 인정 받아 한 한글단체가 선정한 '우리말 지킴이 10'에 들기도 했다.

이 회장은 "서구 근대화 과정을 살펴보면 라틴어로 된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해 민중의 혀를 되찾아준 종교혁명, 즉 언어혁명에서 시작해 의식혁명, 정치혁명, 산업화로 이어졌지만 우리는 산업화가 먼저 시작된 뒤 최근에야 우리 말글을 되찾는 언어혁명에 접어들었다"면서 "궁극적인 목표인, 우리 몸에 잘 맞는 우리 이론을 만들어내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지만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많아져 희망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모임의 취지를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폄하하는 학계 일각의 비판에 대해 "영국의 로크와 독일의 칸트는 제 나라 말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국수주의에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영국철학, 독일철학을 세계적 철학사조로 키워내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지식인은 우리의 삶에서 얻은 경험을 우리 말로 표현해 이론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일상에 되먹임시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삶과 앎을 잇는 돌쩌귀 노릇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임은 창립 1주년을 기념해 26일 광화문 일주아트하우스 소극장에서 '우리 학문 가능한가'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고전의 우리 말 풀어쓰기에 앞장 서며 외래 학문의 창조적 수용을 실천해온 윤재근 한양대 국문학과 명예교수가 '21세기 한국 인문학의 정신', 눈치 핑계 홧병 등 한국인의 독특한 심리현상을 연구해온 최상진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가 '심리학의 한국화 진행과정', '우리 말 철학사전'을 내는 등 철학 개념과 용어의 한글화에 힘써온 이 회장이 '서양철학의 수용과 한국 철학의 모색'을 주제로 발표한다.

이 회장은 "그동안 세차례 집담회를 통해 지난 100년간 우리 학문이 걸어온 길과 종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지식인의 자화상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했다"면서 "이제는 각자 자기 분야에서 창의적인 우리 이론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며 이번 학술대회가 그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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