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남구 무거동의 박영철(朴永哲 ·36·운수업)씨는 최근 '큰일'을 해냈다. 아파트 인근 8차선 도로의 소음과 관련, 박씨 주도로 주민 2,000여명과 함께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낸 피해 배상 사건이 받아들여진 것. '환경'에 문외한이던 박씨는 "일부 이웃이 배상에서 제외돼 불만이지만 시와 시공사를 상대로 한 환경분쟁에서 이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뿌듯해 했다.■환경분쟁 보편화
환경분쟁이 급속히 증가하는 가운데 그 양상도 대중화, 다양화하고 있다. 섣불리 환경에 해악을 끼쳤다가는 큰 코 다치는 상황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22일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올들어 접수된 환경분쟁 사건은 313건으로 지난해 154건의 배를 넘어섰다. 조정위가 설립된 1991년 1건, 92년 5건에 머물던 환경분쟁 사건이 10여년 새 수백 배 늘어난 셈이다.
조정위 관계자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생활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요구 수준이 향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더욱이 과거 서울, 인천 등 수도권에 집중됐던 환경분쟁은 이제 농촌의 농민 등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분쟁 지역 중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63%에 달했으나 2001년 54%로 줄어들더니 올 들어서는 40%대에 머물고 있다. 같은 기간 고속도로 건설 등 민원발생 소지가 많았던 충청권의 비율은 14%에서 29%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다양해지는 분쟁 유형
사건 증가폭 만큼이나 분쟁 유형 등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갈등 주체들이 '주민-업체' 일변도에서 '주민-지자체-업체', '주민-주민' '업체-업체' 등으로 다원화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시 유경근(57)씨는 최근 기름 유출로 기르던 미꾸라지가 떼죽음당했다며 주유소를 상대로 한 환경분쟁 조정에서 배상금 1,390만원과 함께 토양복원 조치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지난달 군산에서는 식품회사가 이웃의 합판공장을 상대로 먼지피해 배상을 제기했으며, 부천의 한 나이트클럽 주인에게는 윗층 식당 등의 진동방지 대책까지 세우라는 엄격한 '처벌'이 가해졌다. 조정위 관계자는 "올해 초 아파트 층간(層間) 소음은 시공회사 책임이 있다는 결정이 있은 뒤 비슷한 사례를 호소하는 상담이 수백건 쇄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피해 원인별로는 주거지 인근 도로나 공사장 등의 소음·진동이 81%로 압도적이지만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을 호소하는 사례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단한 분쟁조정 신청
이처럼 환경분쟁이 늘어난 데는 간단한 분쟁 조정 절차도 한몫한다.
우선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홈페이지(edc.me.go.kr)에서 신청서와 작성 예규를 다운받아 작성한 뒤 우편으로 조정위원회(정부과천청사)에 접수한다. 담당 심사관과 전문가들이 현장조사를 하며 재정위원회에서 당사자 심문을 거쳐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 보통 3개월이 걸리지만 최근 분쟁사건이 폭증해 1∼2개월 늦춰지는 경우도 있다. 수수료는 피해신청 금액에 따라 달라지며, 500만원 이하일 경우 2만원이며 5,000만∼1억원은 15만5,000∼25만5,000원이다.
그러나 청구 금액이 많다고 해서 배상 액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조정위에서 결정된 배상액은 통상 청구액의 10%선이었다. 정신적 고통을 입증하고 계량화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
또 소음 등 환경기준이 절대적 판단 근거는 아니어서 기준치 이내여도 방지대책 마련 등의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조정위 신창현(申昌賢)위원장은 "그동안 업체, 지자체 등에서 환경피해를 간과한 게 사실"이라며 "주민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분쟁조정제도의 문턱을 더욱 낮추겠다"고 말했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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