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시집 "슬픔의 뿌리"낸 도종환 시인/사랑도 인생도 곱기만 하던가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시집 "슬픔의 뿌리"낸 도종환 시인/사랑도 인생도 곱기만 하던가요?

입력
2002.10.23 00:00
0 0

시인 도종환(48)씨는 9월부터 EBS TV '책과 함께 하는 세상'의 사회를 맡고 있다. TV에서 만나는 그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사회자인지 초대손님인지 분간이 안간다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그는 웃는다. 그만큼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프로그램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그를 반기는 시청자의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시청률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시청자들 중에는 '접시꽃 당신'의 스타 시인인 그에게 열광했던 독자도 적지 않을 법하다.도종환씨가 여덟번째 시집 '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발행)를 출간한다. 4년 만이다. "오지의 비탈이든 먼지 많은 도시든 가리지 않고 뿌리내리기를 소망했다"던 그가 "한적한 강 마을로 돌아가 집 한 채 짓고 살고 싶다"고 말한다. 낮은 데서 뒤섞여 그곳을 환하게 바꾸고 싶었다던 시인은 이제 멀찌감치 외롭게 있고 싶어한다.

많은 시가 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 말들은 대개 투명하다.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정직하다. 그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도종환씨의 이름을 들으면 떠올릴, 지극한 서정성의 옷을 입은 것도 있다. 사랑에 관한 시가 그렇다. '그를 만났을 땐 불꽃 위에서건 얼음 위에서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숯불 같은 살 위에 몸을 던지지도 못했고/ 시냇물이 강물을 따라가듯/ 함께 섞여 흘러가지도 못했다'('목련나무'에서). 도씨는 '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사랑이었다/ 살면서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건 사랑이었다'고,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고통스러웠다'고 읊는다.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탄식하면서 적어왔을 법한 싯구. 그는 공감(共感)의 힘을 아는 시인이다.

서정성의 옷은 그러나 겉옷이다. 곱지만 평이한 듯 보이는 겉옷 아래 시인의 속옷은 아직껏 남루하다. 해직된 지 10년 만인 1998년 충북 진천군 덕산면 덕산중학교 교사로 복직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아이들에게 "방학 동안 너희들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니"라고 하니까, 아이들은 "보고 싶긴 뭐가 보고 싶어요"라고 깔깔댄다. 그래도 그동안 얼마나 아이들이 보고 싶었던지, 시인은 종례시간에 빨리 끝내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의 소란도 시로 적는다.

전교조 충북지부장으로 옥살이를 했으며, 충북지역 민주단체연합 공동대표로 일하기도 한 그다. '슬픔의 뿌리를 찾으러 가는 발걸음이 오래지 않아 끝나고 내 근원의 물음도 몇 해가 가기 전에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자귀나무꽃을 찾아서'에서) 믿었다. 평생을 두고 계속 가리라고 다짐한 길이지만, 여전히 그 길이 부드럽고 곧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이제 어떤 보폭으로 가야 할지 고민한다. '혁명의 꿈을 접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버린 건 아니어서/ 새로운 세상이 온다면 꼭 사월 나뭇잎처럼/ 한순간에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었으면 싶다'('나뭇잎 꿈'에서). 세찬 바람이 불고 단단한 얼음으로 덮여 걸음을 뗄 수 없는 길, 그 길 위에서 시인은 한없이 곱고 아름답기만 한 것처럼 보였던 삶과 사랑의 진실을 깨닫는다. '쓰러지지 않으며 가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눈보라 진눈깨비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아름다운 길'에서). 그는 이제 희망을 시로 쓸 수 있게 됐다. 시인은 희망의 몸을 드러낸다. 그 몸은 부끄럽고 서툴지만 순결하다.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희망의 바깥은 없다'에서).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