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의 외교·안보 문제를 조언하는 중요한 싱크탱크 중 하나인 워싱턴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21일 '북한 핵 개발 시인에 따른 현황과 전망'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제네바 핵합의를 이끌었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 등 북한 전문가 3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북한은 이라크와는 다르며 미국은 결국 북한과 협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동맹국들이 협력해 당분간 북한에 대한 경제·외교 접촉을 일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
북한이 왜 핵 개발을 시인했는지가 궁금하다. 경수로 건설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북한은 경수로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우라늄을 농축했다고 말하면 변명이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네바 핵 합의의 큰 목적은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을 막자는 것이다. 합의가 없었다면 북한은 매년 100㎏의 플루토늄(핵무기 30∼40개 제조 가능)을 생산했을 것이다. 핵 합의 때문에 상황이 악화된 게 아니다. 오히려 더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 등 미국의 우방들은 미국이 충분히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북한과의 외교 교섭이나 경제적 접촉을 일시중단하고 북한에 주는 인센티브도 중단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 간의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그래야 한다.
제네바 핵 합의서는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을 성공적으로 막아왔으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표준적 사찰인 특별사찰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또 합의서에 적절한 시점에 제3국으로 보내도록 명시돼 있는 북한의 사용 후 핵연료봉을 빨리 제3국으로 보내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한 강경책만이 능사가 아니다. 미국은 경제 개방과 정치문제도 포함시켜 협상해야 한다. 한미일 3국의 협의 과정에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포괄적 접근을 논의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94년 당시와 큰 차이가 없이 북한과 미국의 상호의무 이행 형태로 협상이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94년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 군사행동 봉쇄정책 협상 등 3가지 조치를 선택할 수 있지만 군사행동은 명백한 참사가 예상되고 봉쇄정책은 북한의 반발이 예상되므로 결국 협상으로 가야한다.
● 로버트 아인혼 (CSIS 국제안보담당 수석고문)
현 상황은 북한이 외부에서 가스 원심분리기를 얻은 수준이다. 이것은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제조에서 매우 초보적인 단계다. 실험실에서 만들어보는 정도다.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생산 가능성은 아직 별로 없다. 그러나 북한은 숨기는 데 능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북한에 핵 기술을 공급한 나라로는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등이 거론되지만 상식적으로는 파키스탄에 초점이 맞춰진다.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생산단계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이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 생산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판단이다.
제네바 핵 합의서는 법률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다. 법률문제 같으면 쌍방 중 어느 일방이 합의 파기를 선언하면 합의가 자동적으로 무산되지만 기본합의서는 정치적인 결정이다. 어느 일방이 파기를 선언한다고 해서 자동파기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중유 및 경수로 문제는 합의서 파기의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별도의 정치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
● 커트 캠벨 (CSIS 부소장)
미국은 분명한 사실을 밝힐 수 있을 뿐이지 군사공격의 가능성은 별로 없다. 94년에도 이 문제에 대한 얘기가 많았지만 미국의 조치는 기본적으로는 핵 확산방지에 그칠 것이며 선제공격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미국은 중동과 한반도에서 두 개의 전장을 유지할 수 있지만 국내의 대 테러 전쟁까지 세 개의 전장을 동시에 유지하기는 힘들다. 이라크 문제 처리도 바쁜데 북한문제까지 강경책으로 나가기는 어렵다.
이라크와 북한은 같은 차원으로 보면 안 된다. 주변 중동 국가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해도 된다고 얘기하는데 북한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공격에 반대한다. 이 문제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부시 행정부에 북한 문제를 신중히 처리할 것을 당부했다. 또 중국은 이라크에 대해서와는 달리 북한에 대한 강경책에는 분명히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이 의도된 것이라면 보험의 성격이 짙다. 북한은 미국이 핵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북한 외교 당국자들이 관료적인 타성으로 시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정리=김승일 워싱턴특파원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