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을 맞으며 단풍이 남으로 남으로 향한다. 이번 주말부터는 남쪽의 산에서도 제법 깊이 물든 단풍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번잡한 단풍관광 대신 한적한 단풍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남녘의 가을 산을 꼽아본다.■변산/459m·전북 부안군
변산반도는 볼거리의 집합소다. 크게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나뉜다. 산을 중심으로 한 내변산과 해안을 빙 도는 외변산이다. 여행객의 95%는 바닷가의 외변산을, 나머지 5%만 내변산을 찾는다. 그러나 변산의 핵심은 내변산에 있다. 산을 오르지 않고는 변산을 보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변산의 제1경 직소폭포가 단연 으뜸이다. 직소폭포는 산 속을 흐르는 물줄기가 이루어내는 장관. 높이 22.5m의 거대한 돌덩어리 위에서 거의 수직으로 내리 꽂힌다. 폭포는 계속 2폭포 3폭포로 이어지며 아름다운 소(沼)를 만들었다. 분옥담, 선녀탕이라는 고운 이름이 붙어있다.
변산은 그릇처럼 생긴 산. 직소폭포는 그 그릇 안에 있다. 아름다움을 보려면 산을 넘어야 하고 보고 나오는 길에 또 산을 넘어야 한다. 내소사에서 출발해 관음봉을 넘어 직소폭포에 닿았다가 다시 월명암-낙조대 코스를 거쳐 남여치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인 산행코스다. 약 5시간이 소요된다. 변산반도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63)582-7808.
■덕유산/1,614m·전북 무주군
유명한 무주구천동 계곡이 산행의 벗이다. 처음에는 산보하듯 걸으면 되지만 나중에는 숨이 턱에 차도록 가파른 코스를 올라야 한다. 1,000m 이상의 단풍은 이미 절정을 넘겼고 능선을 타고 산 아래까지 이르고 있다. 덕유산의 얼굴인 삼공매표소에서 백련사를 거쳐 주봉인 향적봉에 오르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약 9㎞. 오르고 내리는데 5시간 가량 걸린다.
백련사까지의 길은 경사가 거의 없는 평지다. 비파담, 구월담 등 구천동 계곡의 절경이 길 옆으로 펼쳐진다. 흘러내리는 물은 깊고 맑다.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 가는 길을 많이 닮았다. 백련사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로 접어든다.
매표소에서 백련사까지가 워밍업 코스라면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으로 오르는 이 길은 유격훈련 코스를 방불케한다. 4㎞에 불과하지만 대단한 인내를 요구한다. 하산은 중봉을 넘어 오수자굴을 거치는 길을 택한다. 백련사에서 길이 합쳐진다. 무주는 지난 수해로 피해를 많이 입은 곳.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덕유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63)322-3174.
■청량산/870m·경북 봉화군
이 산에서 공부를 했던 퇴계 이황은 '청량산 육육봉(12개의 봉우리)을 아는 이는 나와 흰 기러기 뿐'이라는 노래를 지었다. 그만큼 숨어있었다는 의미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교수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청량산은 쉬쉬하려는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문난 비밀'이 되어 버렸다. 험한 산골에 둥지를 틀고 있는 교통의 오지이기 때문에 도시의 산꾼들이 즐겨 찾기가 쉽지 않다. 덕분에 청량산은 여전히 이름 그대로의 청량함과 고결함으로 반짝인다.
청량산은 돌산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남성미를 물씬 풍긴다. 거침없이 솟아오른 바위 봉우리, 절벽에 뿌리를 박고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아름드리 소나무 등. 도저히 오르지 못할 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일단 안에 들면 훈훈하다. 바위를 돌아오르는 아기자기한 등산로 곁으로 계곡의 옥수가 따라 흐른다. 대찰은 아니지만 품위와 격조를 지닌 청량사도 정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본격적인 등산은 청량사에서 시작된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응진전-금탑봉-경일봉-보살봉-의상봉(청량산의 주봉)을 거쳐 다시 내려오는 것. 4시간30분∼5시간 걸린다. 관리사무소(054)672-4994.
■주왕산/721m·경북 청송군
잘생긴 산이다. 사람으로 치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기품이 있다. 우뚝우뚝 선 바위에서 그 매력이 나온다. 병풍처럼 바위가 둘러쳐져 '석병산'이라고도 불렸던 이곳은 설악산, 영암 월출산과 더불어 남한의 3대 바위산으로 꼽힌다. 그러나 안에 들면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누구나 산보하듯이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다.
산 아래 대전사에서 산 속 마을 내원동을 왕복하는 코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주파할 수 있는 코스. 조금 험한 트레킹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본격적으로 등산을 하려면 대전사-정상-칼등고개-주왕암-망월대를 거치는 산길로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주왕산의 자랑은 3개의 폭포다. 걸어서 약 15분 간격으로 늘어선 이 폭포들은 기세와 모양이 모두 다르다. 제1폭은 주변이 빼어난 바위로 둘러쳐져 있다. 마치 바위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듯하다. 2단 폭포인 제2폭포는 여성스럽다. 3개의 폭포중 유일하게 사람의 접근이 가능하다. 가장 웅장한 것은 3폭포. 주변의 수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줄기는 바위 밑 뿐만 아니라 옆구리까지 깊게 파놓았다. 폭포 옆에 철골 계단과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주왕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54)873-0014.
■남산/494m·경북 경주시
경주 남산은 '관광지 경주'가 아니라 '답사지 경주'의 정수로 꼽을 만한 곳이다. 산 전체가 살아있는 불교 박물관이다. 길을 돌면 부처를 만나고, 바위를 타고 넘으면 석탑에 닿는다. 절터가 130여 곳, 석불과 마애불이 100여체, 석탑과 폐탑이 71기에 이른다. 13개의 보물과 12개의 사적, 10개의 지방유형문화재가 밀집해 있다. 단풍의 색깔에 취한 불교의 나라. 묘한 매력을 풍긴다.
경주 남산의 골짜기와 능선은 40여 곳. 삐죽삐죽 솟은 바위를 포함해 봉우리가 180여개다. 답사 코스만도 70여개에 이른다. 삼릉과 용장을 연결하는 코스가 가장 인기가 높다. 배리 삼불사에서 시작해 산기슭을 따라 냉골의 유적을 답사하고 금오산 정상에 오른 뒤 용장계곡으로 하산한다. 신라시대의 석불을 시대별로 모두 만날 수 있다. 오르는 길은 평탄하지만 용장골로 내려오는 길은 너덜지대(바위지대)가 많아 조금 위험하다. 음료와 행동식을 준비하고 반드시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남산을 연구하는 교사들의 모임인 신라문화원(054-774-1950)이 제시하는 코스를 따르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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