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조약이나 협정은 체결 당시 국가 사이의 힘의 관계와 여건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으로 현상(現狀)을 영원히 동결할 수는 없고, 그 효력은 여건이 바뀌지 않았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을 때만 지속된다"알브레흐트- 카리에는 외교사의 고전 '유럽 외교사' 서문에 이렇게 썼다. 국제 협정의 본질에 관한 이런 규정에 수긍한다면,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합의는 이미 효력을 잃었다. 양쪽 모두 여건이 크게 달라졌다고 공개 천명한 마당에, 합의가 깨졌는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새삼스럽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합의 이전의 적나라한 힘 겨루기로 되돌아 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합의를 모색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합의 파기의 책임을 논란하는 것은 한가하다. 국제 관계에서 도덕적 판단은 힘 겨루기를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 본질과 무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본질을 숨기려는 술수가 작용한다. 합의가 파기된 바탕에 힘으로 새 질서를 강요하든 타협으로 새로운 합의를 이루던 간에, 결정 변수는 도덕적 우열이 아닌 힘의 관계와 여건이다.
제네바 합의를 낳은 1990년대 초반에 비해, 이번 북한 핵 논란은 겉보기에 훨씬 이성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핵 개발의 무모함을 비난하는데 온통 매달리고, 미국의 공격에 따른 전쟁 위험을 떠드느라 본질은 외면한 10년 전과는 크게 다르다. 우리 정부와 사회부터 그렇고, 사태 진전에 고삐를 틀어 쥔 미국 조야(朝野)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특히 우리 사회가 동요하지 않는 데서 세월이 가져 온 변화를 실감한다.
90년대초에는 북한의 핵개발이 침략 야욕 탓이 아니라 안보 불안때문이라는 진단에 귀 기울이는 데만도 오래 걸렸다. 바깥의 객관적 전문가들은 남북한 힘의 균형이 급속히 기운 가운데 공산권 붕괴로 고립된 북한은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고, 활로를 찾는 필사의 선택으로 핵 개발을 시도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를 막으려면 먼저 북한의 심각한 안보 불안을 덜어 줘야 한다고 처방했다.
여기에 우리 사회는 한편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유화책을 입에 올리는 건 꺼렸다. 강경책을 되뇌던 보수세력은 미국이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과 주한 핵무기 철수 등 북한의 줄기찬 요구를 수용하자 머쓱해 했을 뿐이다. 미국의 북폭 가능성이 대두한 막바지 고비에서도 전쟁 반대를 목청껏 외친 이는 소수였고, 곡절 끝에 제네바 합의에 이르러서도 핵 위협에 굴복한 것을 탓한 몽매한 반공주의자가 많았다.
이번에는 미국이 먼저 평화적 해결을 강조한 때문인지 우리 사회의 반응은 온건하다. 그러나 미국이 제네바 합의에 충실하게 북한의 고립 탈출을 돕지 않고 오히려 적대와 압박으로 궁지에 몰아간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여전하다. 해법은 북한의 굴복에만 있다고 보는 이런 완고한 시각에는 미국이 '악의 축' 규정과 '선제 공격론' 따위로 북한의 불안감을 부추긴 책임을 미국 언론이 지적하고 나선 것에 다시 머쓱해 할 법 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은 사태의 본질을 바로 보고, 북한뿐 아니라 미국의 의도 또한 냉정하게 헤아리는 것이다. 북한 핵 위협에만 신경 쓰다보면 미국이 낡은 정보를 새삼 충격적으로 부각시킨 목적을 간과할 수 있다. 바깥 언론은 이미 북한의 개방 노력이 남·북은 물론, 북·일 관계까지 진전시키는 등 한반도 현상이 급변하는 시점과 여건에 주목하고 있다.
90년대 북한 핵 사태가 냉전 종식 직후 한반도 정세 변화를 동결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 사태도 남북 교류 열기와 북한의 개방 드라이브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 변화의 대세를 거스르는 현상 동결을 되풀이 감수하지 않으려면, 그야말로 자주적이고 결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강 병 태 편집국 부국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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