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의 두 번째 장수 총리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4년9개월 재임 중 가장 힘들었던 결단이 1983년 KAL기 피격 때 일본 자위대가 탐지한 소련 전투기와 지상관제탑과의 교신기록을 내놓는 일이었다고 했다. 1주일간이나 시치미를 떼던 소련은 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앞에 격추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96년 회고록 '천지유정(天地有情)'의 출판에 즈음한 인터뷰에서 당시의 곤혹스러웠던 상황을 회고한 바 있다.나카소네가 고민했던 이유는 다름 아니다. 이번 일로 자위대의 시베리아 방공감시망이 노출되고, 이렇게 될 경우 감시망의 작동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누구로부터 감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피감시자는 추적망을 따돌리려 암호체계 등 운영시스템을 교체하려 할 것이다.
일본의 감시망을 확인한 소련 역시 기존의 방식대로 군사력을 운용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무력화한 방공감시망의 재구축에 일본은 엄청난 비용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냉혹한 냉전체제 아래서 자위대는 물론, 오키나와에 기지를둔 미국도 시베리아 소련 극동군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입을 꼭 다물었다. 대신 일본에게 증거를 내놓도록 했다. 방위청장관으로 막강 자위대의 초석을 다졌던 나카소네가 자위대 정보의 공개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첩보전에서 자국의 손실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미국이 얄미웠을지도 모른다. '교신기록'의 유출이 '장수총리'에겐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은 것 같다.
요즘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임기 말 증상이라고 해도 이해가 쉽지 않다. 북한도발 첩보 묵살의혹을 둘러싼 공방을 보면서 군이 제정신 있는 집단인가를 되묻게 된다. 우리 군이 내부적으로 심각한 병에 걸리지 않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소위 '블랙 북'이라는 북한군 통신감청 극비문서가 TV카메라 앞에 버젓이 등장했다. 부대의 존재부터 극비여야 할 그 부대장의 손에 의해서다. 그것도 직속 상관인 국방장관이 함께한 국회 국방위에서 였다. 뿐만 아니다. 소장 준장 대령이 이 문제로 한데 뒤엉켜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하고 볼썽사납게 이전투구까지 벌이고 있다.
도대체 지휘부가 얼마나 병들었으면 이런 기강문란 행위가 일어나겠는가. 혹 지휘부가 특정지역, 특정고교 출신들이 '형님, 동생' 하는 사조직으로 전락한 때문은 아닌가. 최규선이란 한 젊은 권력중독자와의 관계가 말썽이 되자 "장관공관에서 해놓은 밥에 숟가락 하나 더 놓아 식사를 함께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던 그런 장관아래서 군대가 영(令)이 제대로 서기를 기대한 것이 잘못일까. 국방장관 공관만찬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끓여놓은 된장찌개에 밥 한 그릇 대접하듯 하는 그런 행사는 분명 아닐 터인데.
더욱 가관인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국방부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다. "장관이 삭제지시는 안 했지만, 재보고 지시는 결과적으로 2개 항목을 삭제하도록 영향을 주었다" 고 했다.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군인답지 않은 이 같은 양비론적 봉합결론을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군대는 일체의 정치논리나 도덕적 가치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오직 적에 대한 살상과 파괴에 모든 능력과 수단을 집중해야 한다. 군이 정치논리에 한눈 팔게 되면 그 군대는 이미 군대이기를 포기한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햇볕정책은 어디까지나 통치논리다. 이 때문에 군이 스스로의 임무를 소홀히 했다면 그런 군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시중엔 "YS가 하나회 등 군내 사조직을 척결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결딴났을 것"이라고 비웃는 얘기도 있다. 군의 기강해이는 정말 위험하다.
노 진 환 주필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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