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등에서 30여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퇴직한 이엽기(61)씨는 요즘 여행 가이드로 전국 산하를 누비고 있다. 대학(고려대 사학과) 시절부터 불교문화재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틈틈이 여행을 즐겼던 그는 단순한 인솔자 혹은 관광코스 안내자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체험을 가진 그는 자신만의 역사해석과 언변으로 이른바 '고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으며 보람있고 활기찬 인생을 엮어가고 있다.
나는 '천년과의 대화'를 이끄는 안내자다. 짧게는 30∼40년, 많게는 70년을 살아 온 사람들이 1300년이 넘은 무령왕릉 인근 서낭당터에서 선조들의 족적을 어루만지며 세월과 대화를 나눈다. 천년 넘은 문화유산이 가득한 우리 땅을 밟으며 여행자들은 아웅다웅한 잡사(雜事)를 뒤로 하고 호연지기를 기른다.
내게도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 삼양사에 들어간 나는 최고 자리에 오르겠다는 마음으로 기획실 말단 때부터 정말 열심히 일했고, 교육과장, 총무과장, 총무이사, 연수원장을 거쳐 영남 공장장까지 지냈다. 우리 동기 30∼40명 중 임원까지 승진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두 명. 나름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1988년 전국적으로 불붙었던 노사분규 불똥이 영남 공장에도 튀었고 결국 나는 분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1년 가량 쉬다 논노 기획이사로 들어갔지만 1993년 논노의 부도로 나의 직장생활은 다시 마감됐다.
그간 힘든 생활의 유일한 즐거움은 여행이었다. 쉬는 날에도 좀처럼 집에 있지 않았다. 적어도 한달에 두 번은 여행을 다녔고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전국에 가보지 않은 곳이 별로 없다. 대학 때 한국사상사를 전공했고 불교미술에도 관심을 쏟아왔던 나는 여행지에 들르면 항상 그곳에 관한 자료와 사진을 모아 두었다. 이 스크랩은 지금도 여행지로 나설 때 훌륭한 교재가 되고 있다.
논노 부도 이후 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으로서 경영인 대상 강의를 하면서 한 여행사의 비상근 이사로 일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행업에 발을 담그게 됐다. 한동안 여행사 월급쟁이 사장도 지냈고 2000년부터 3년째 답사단체 우리여행사에서 프리랜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나름대로 재충전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 한다. 얼마 전 동국대 사회교육원에서 불교미술 과정을 공부했고 단국대 정영호 선생, 동국대 황수영 선생, 간송미술관 최완수 실장 등 문화재의 대가들로부터도 꾸준히 배웠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문화재지만, 사실 화려한 경치에 가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설명이라고 써놓은 안내판도 복잡하기만 하다. 나는 '장방형' '정방형' 등 표지판 단어해설부터 시작한다. 연혁이나 관련 인물뿐 아니라 그곳서만 볼 수 있는 포인트를 중점적으로 알려준다. 부석사 대웅전에는 윗부분 일부를 잘라놓은 문이 있다. 이 틈으로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하늘과 소나무, 산이 한폭에 들어와 그 자체가 그냥 그림이다. 서양미술의 '폐쇄사각기법'이 1300여년전 사찰에 깃들여 있으니 어찌 신비롭지 않을까.
사람들의 여행 패턴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질탕하게 먹고 마시는 대신 뭔가를 깨치며 재충전과 정서순화의 기회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이 평균 40%나 돼 고무적이다. 불교미술 해설에 대해 '우상숭배'라며 반발하는 일부 사람도 있고 '놀러 왔는데 웬 공부'하며 설명 자체를 멀리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음에 가는 곳은 어디냐"며 꼭 나를 따라다니는 이들도 많아 보람을 느낀다.
용돈 정도는 생기지만, 돈을 벌겠다는 생각만으로는 결코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다. 사람들을 모아 인솔하는 일이 보통 귀찮고 번거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빛나는 사회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을지라도, 거창한 족적은 아닐지라도 나는 문화유산 안내자로서의 내 일에 대해 당당하다.
요즘은 억새가 한창인 민둥산, 오색약수와 주전골 단풍 등이 있는 강원도 지역을 주로 다닌다. 여행을 나가는 것은 보통 주 2회 정도. 주말에는 강화 전등사에서 자원봉사 가이드로 일한다. 일이 없을 때는 문화유산을 공부한다. 요즘 나는 생애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본래 남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기를 좋아했고, 여행을 좋아했다. 가이드 일은 이 둘의 행복한 결합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죽는 날까지 길을 나설 생각이다.
사람들은 흔히 "어느 곳이 가장 좋으냐"고 묻는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모든 곳이 다 좋다." 알고 나면 보인다. 기왓집 주춧돌 하나에도 역사가 묻어 있다. 천년전으로의 시간여행에 동참하시라. 그리고 그 길에 내가 안내자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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