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최종 조율 단계에서 불거져 나온 쟁점들로 인해 합의 도출에 실패함으로써 협상 전망이 불투명해졌다.최종 타결 직전까지 갔던 협상을 지연시킨 것은 투자·서비스 분야의 3가지 쟁점. 금융시장을 개방하라는 우리측 요구와 자국의 외국인투자촉진법을 협정의 예외로 하자는 칠레의 요구, 부속서에 규정할 투자협정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는 업종 등이다.
칠레정부는 금융시장 개방에 대해 "한국과 비슷한 여건의 멕시코 등 다른 나라와도 FTA 체결에 금융시장 개방을 포함하지 않았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우리정부는 원칙적으로 금융 부문을 협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칠레가 남미에서 가장 개방적인 금융체제를 갖추고 있고 우리 기업의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 개방을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는 게 우리정부의 방침. 정부 관계자는 "칠레가 멕시코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와 FTA를 체결할 때 금융서비스 부문을 제외시켰지만 최근 마무리된 유럽연합(EU)과의 협상에서는 포함시킨 것으로 안다"면서 우리측이 금융부문 개방을 주장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칠레가 자국의 외국인투자촉진법을 협정의 예외로 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칠레가 외국인투자촉진법 적용을 고집하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금에 대해 1년내 회수를 못하도록 하는 등 규제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도라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투자협정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는 업종에 대해서도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이 때문에 양측 협상단은 당초 사흘로 예정됐던 일정을 나흘로 연장하면서 철야 마라톤 회담을 계속했으나 이견을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본국 정부의 훈령도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결국 칠레는 이번 협상을 마친 뒤 곧바로 미국과도 FTA 협상 일정이 잡혀 있어 추가 협상은 어렵다며 협상 종료를 최후 카드로 내밀었고, 우리측은 사흘간 쟁점 사안들에 대해 추가 검토한 뒤 수용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로써 협정의 최종 타결 여부는 우리 정부의 결정에 따라 달라지게 됐다.
정부로선 농산물 관세 양허안 등 주요 현안들에 대해 이미 합의가 된 상황에서 협상을 결렬시키는 데는 상당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협상 결렬에 따른 대외 신인도 하락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쟁점사안에 대해 일정부분 양보를 하면서 칠레정부와 물밑 접촉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협상 타결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있다.
결국 정부는 당초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돌출 쟁점들로 인해 막판에 발목을 잡힌 꼴이 됐다. 외교통상부와 농림부 등 관계부처 관계자들은 하루 전인 20일 밤 늦게까지도 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금융시장 개방 요구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재정경제부의 주장이 의외로 강하자 몇 시간만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결국 부처간 협의나 쟁점 사안들에 대한 연구, 상대방의 협상 전략이나 요구 사항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협상 타결을 서두르다 상대방에게 허를 찔린 셈이다.
정부 스스로도 이날 밤 협상결과를 발표하면서 "(쟁점들에 대해) 합의를 위한 검토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실토했다. 정부 관계자는 "농산물 양허안에 협상이 집중되면서 다른 부문의 협상이 상대적으로 심도 있게 진행되지 못한 것 같다"고 해석했으나, 정부의 허술한 협상전략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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