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개발 계획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미일 연대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반복해 강조하면서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경수로 건설 사업 동결과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다.20, 21일 방일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제네바 핵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일단 제네바 핵 합의와 경수로 건설 사업이 당분간 지속돼야 한다고 신중한 접근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대신 켈리 차관보에게 29, 30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릴 예정인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에서 북한의 핵 개발 계획 중지를 최우선적으로 요구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는 교섭을 진전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일본 정부는 당장 제네바 핵 합의가 파기돼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고 북한과의 대화채널이 막히면 지난달 17일의 북일 정상회담을 통한 과감한 대 북한 정책이 실패로 귀결될까봐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측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고 사죄한 것과 핵 관련 국제합의 준수를 약속한 것을 양대 성과로 내세워 왔다.
이중 납치문제는 피랍자 8명이 사망했다는 충격적 소식에 오히려 국교정상화를 서두르지 말라는 국내 여론이 조성돼 이미 성과의 의미가 반감했다. 북한의 핵 개발은 남은 핵 관련 성과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북한측에 농락당했다는 국내외의 비난을 떠안아야 할 부담만 남게 된다.
하지만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미국측이 경수로 사업 동결을 제안할 경우 미일 동맹을 가장 중시하는 일본으로서는 거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또 북일 정상회담의 합의를 북한이 깬 것을 일본이 직접 확인한 뒤에도 국교정상화 교섭을 계속한다는 것은 일본 국내 여론만 고려해도 불가능하다. 19일 임시국회 개회식의 시정연설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북한과의 협조관계가 국익에 부합한다"고 밝히는 순간, 의석에서는 "핵을 만들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는 야유가 터져나오는 등 벌써 이번 국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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