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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설렁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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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설렁탕론"

입력
2002.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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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후보가 설렁탕 한 그릇도 사지 않았다"는 민주당 일각의 불만은 한국 정치의 작동 방식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관계에 대한 투자가 정치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하는 한국 정치의 법칙을 '설렁탕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설렁탕론'의 중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과 관련된 정치 비화(秘話)를 다룬 책들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사람을 인간적으로 감동시키면 이념과 원칙마저 초월케 하는 마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로 즐겨 사용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설렁탕론'이 우리가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정치 개혁과 부합될 수 있는가 하는 건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르자면, 정당은 내부적으로 작은 차이는 있을 망정 큰 흐름에 있어서 이념과 정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결사체다. 이념과 정책은 공(公)이요 인간관계는 사(私)다. 물론 인간관계가 공적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윤활유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강조되는 인간관계는 그 선을 넘어선 것이다.

노 후보와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사이의 갈등을 다룬 기사들을 보면 노 후보가 김 고문에게 결례를 범해 두 사람이 감정적으로 틀어졌다는 말이 나오곤 한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 투자를 중시하지 않는 노 후보의 그런 점을 그의 약점으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더라도 괜한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노 후보의 오늘이 있게 만든 그의 강점은 바로 인간관계보다는 원칙에 충실한 것이 아니었나? 그가 부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3당 통합을 거부하고 비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원칙을 중시하는 걸 놓고 말하자면, 김 고문도 정치판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인물이다. 노 후보가 김 고문에겐 그런 원칙을 기대하면서 제한된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원칙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들에게 투자한 걸로 볼 수는 없는 걸까? 이는 노 후보가 원칙을 아예 무시하거나 원칙이 서로 크게 다른 정치인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 점을 보더라도 일관된 대응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인간관계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원칙에 따라 돌아가야 할 일에 대해서조차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느 정당,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우리는 이성적으론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와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오랜 습속의 명령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이중성을 고수하고 있다. 어느 쪽이라도 좋으니 제발 하나로 통일하자. 설렁탕도 이해관계가 없는 사이일 때 같이 먹는 게 좋을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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