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로부터 악재가 누적되면서 우리 경제에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경착륙의 우려마저 증가하고 있다. 예상 밖으로 더딘 미국의 경제회복과 이라크전에 대한 우려, 수출둔화와 신용버블 확대 등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위험 요인에 휩싸이고 있는 느낌이다.얼마 전 한국경제에 관한 학술대회에 참가한 UC버클리대 아이켄그린 교수는 "한국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시장경제 원리를 확고히 정착시키지 않으면 또 다른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이는 작금의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적절하게 진단하고 처방한 것이다. 대내외 상황이 아무리 곤혹스러울지라도 기업들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미래의 불확실성이나 경착륙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개별 기업들이 외부 쇼크에 견딜 수 있도록 하는 첫 걸음은 기업지배구조를 그야말로 내실있게 개선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국제기구와 외국투자자들의 권고에 따라 기업의 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하여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경영감독 혁신을 위해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와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화 등 대대적인 입법을 단행하였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기존의 제도를 개편한다고 해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기에서도 재삼 확인되고 있다. 외국에서 아무리 잘 시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토양이 다른 우리나라에 이식했을 때 효과적으로 정착되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과제는 민간기업의 사외이사, 공기업이나 정부투자기관의 비상임이사의 독립성 확보일 것이다. 사외 혹은 비상임이사가 독립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 임면에 있어 최고 경영자(정부)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사추천위원회를 제도화하고 있으나 내실있는 운영이 정착되지 않고 있다.
공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로서 자격요건이 미비한 인사의 채용이나, 인센티브의 부족, 그리고 이사회에 의한 경영진의 견제기능 미비 등으로 주요 의사결정 과정이나 임원의 임면 등에서 정·관으로부터의 직·간접적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임이사의 선정은 당연히 이사회나 사장의 권한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의 임면권을 주무 관(官)이 갖고 있다. 정부투자기관 관리 기본법 개정으로 선진국형 자율경영 및 이사회 기능 강화, 경영진 견제라는 제도는 갖췄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모든 임원의 추천과 제청, 임명 등에 있어 정부나 정치권에의 예속화가 여전한 실정이다. 비상임 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인사의 독립성 강화는 물론이고 권한과 책임에 상응하는 보수와 인센티브 등도 현실화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민간기업의 경우에도 사외이사 추천위원회가 최고경영자의 의사에 구애받지 않고 공정하게 그 적임자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법에 보장된 집중투표제와 주주제안권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중·장기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도의 도입과 내실있는 실천이 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함께 기업가치를 배가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정부관료 및 CEO들이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기업의 경영 투명성 확립은 이제 국가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일의 요건이 되었다. 이를 위해 종래 유명무실했던 경영감독체제를 견고히 함으로써 기업내부의 경영감시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OECD의 기업지배구조 원칙을 비롯한 국제적인 규범화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여건에서 우리나라의 경영감독체제 역시 국제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다. 대내외 경제상황이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안정적 성장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체질 강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는 지배구조 개선을 공고히 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만 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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