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80년대 유명 여류작가의 책 제목이다. 이 책은 당시 많은 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책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줬다."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4,000억원 대북 비밀지원설'에대한 현대그룹 핵심인사들의 처신이다. 문제의 2000년, 대북 비밀 지원이 있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을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의장,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 그리고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사장 등 '핵심 3인방'은 이해 못할 침묵으로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지난달 25일 예정돼 있던 국회 정무위원회 증언 전 출국한 뒤 지금까지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다. 정몽헌 의장은 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취재진을 피해다니다 얼떨결에 몇 마디 했을 뿐이다. 10일 귀국하겠다던 정 의장이 언제 들어와 진실을 소상히 밝힐 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충식 전 사장은 지난달 10일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떠난 뒤 측근들조차 행방을 모를 정도로 잠행중이다.
김윤규 사장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국회 증언 하루전인 지난달 24일 금강산 관광 협의차 북한에 들어갔던 김 사장은 20일 가족 및 회사 관계자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불법 입국'하듯 속초항으로 들어왔다. 김 사장은 그뒤에도 회사에 나타나지 않을 뿐더러 집에도 들어오지 않은 채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회사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김 사장은 대북지원설에 대해 "어떻게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정 의장도 대북지원설을 전면 부인했다. 그렇다면 왜 떳떳하게 나서 의혹이 잘못된 것임을 해명하지 않는가. 그들의 침묵은 의혹이 사실이라는 심증만 굳혀줄 뿐이다. 누구를 위한 침묵인지 정말로 묻고 싶다.
윤순환 경제부 기자 goodm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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