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목이 마르다. 이 곳은 빈 방. 그런데 창 틀에 물 한 컵이 놓여 있다. 까치발을 들고도 손에 닿을락말락. 물을 먹고 싶은 욕망은 이런 순간 터질 듯하다. 영화 '중독'은 사람을 가장 안타깝게 만드는 사랑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외형적으로는 남편의 영혼이 깃든 시동생과 형수의 갈등을 그리고 있지만.형수인 은수(이미연)는 시동생 대진(이병헌)을 "대진씨"라고 부른다. 남편인 호진(이 얼)도 이 호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결혼 3년째인 부부와 시동생은 그렇게 그들만의 자연스런 방식으로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가구 공예가인 남편은 아내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오며, 아침마다 칫솔에 치약을 발라 놓는 아주 따뜻한 남자다.
대진이 카레이스에 빠져 형을 걱정하게 만드는 것만 빼고는 그들의 생활은 지나치게 평온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지극한 행복은 불안하다. 대진의 경기일, 서둘러 경기장으로 향하던 형과 자동차 경기장을 질주하던 동생이 같은 순간 대형 사고를 당한다. 1년 후 깨어난 것은 동생 대진. 그런데 깨어난 시동생 대진은 자신을 호진이라고 한다. 후유증으로 생각하기엔 남편의 체취가 너무 강하다. 은수는 혼란스럽다.
영화 '중독'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오는 현상인 빙의를 내세웠지만, 결말에 보이는 반전은 제어되지 못하는 영혼보다 집착이 더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불안한 동거, 그리고 빙의. 파격적인 시동생과 형수의 정사에 이은 놀라운 반전까지 영화는 탄탄한 구도로 소름 끼칠 만큼 집요한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호진과 은수가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도입부의 에피소드가 지나치게 상투적이고 관습적이며, 이 얼과 이미연의 부부 연기가 겉돌고, 중요한 대반전 이후의 에필로그 역시 계륵이지만 이 영화의 셀링 포인트는 따로 있다.
먼저 스타 캐스팅. '공동경비구역 JSA' '번지점프를 하다' 등 비교적 독특한 색깔의 영화를 선택해온 이병헌은 이번에도 이채로운 남자 주인공을 맡아 섬세한 연기를 보인다. 눈 밑의 근육이 가늘게 떨리는 모습만으로도 내면의 파동을 표현할 만큼 그의 연기는 무르익었다. 다소 전형적인 이미연의 연기도 이병헌의 노련한 연기와 호흡이 맞물리면서 안정감을 보인다.
자극적인 소재에 형수와 시동생의 정사장면까지 나오는 영화는 또 꽤 고급스런 멜로물을 표방한다. 앞서 개봉한, 이 영화의 소재 표절 시비를 일으킨 일본영화 '비밀'이 자극적 소재를 로맨틱 코미디처럼 변주한 것과는 대조적인 분위기. 단조에 한 템포 느린 박자로 형수와 시동생의 패륜이 아닌,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인식시킨다.
남편과 아내의 안정적 사랑이 시동생과 형수의 격정적 사랑으로 변하는 독특한 과정은 결국 모든 사랑은 '사람에 대한 사람의 중독'임을 말하는 듯하다. '301 302' '산부인과' 조감독 출신인 박영훈의 감독 데뷔작.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