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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29)잣은 2년 産苦의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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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29)잣은 2년 産苦의 결실

입력
200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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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의 단풍 행렬은 지금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숲의 한가운데 서있노라면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마음이 흔들리고,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한번쯤 멈춰서 심호흡을 하게 됩니다.그러나 이 즈음에도 여전히 짙푸른 잎새로 한결같음을 과시하는 나무가 있는데 바로 잣나무입니다. 오늘은 번잡함을 피해 잣나무 숲길 사이로 산책하다 떨어져 흩어진 잣송이 흔적을 만났습니다. 세상에…. 올해는 잣 따는 계절도 잊고 지낸 것입니다.

잣나무는 소나무와 형제나무입니다. 소나무는 바늘잎이 2장씩 모여 달리는데 잣나무는 5장씩 달려 오엽송이라고도 하지요. 잣나무는 소나무의 솔방울과 비슷하지만 훨씬 큰 잣송이를 엽니다. 꽃이 피고 꽃가루를 운좋게 만난 암꽃들은 가을에 길이 1㎝나 될까 싶은 아주 작은 형태로 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따먹을 수 있는 잣송이로 크기까지 1년이 더 걸립니다. 그래서 잣은 2년에 걸쳐 익는다고 합니다.

익어가는 잣송이가 초록색이면 열매 자체도 광합성을 하여 양분을 공급할 수 있고 초록의 잎 사이에서 눈에 잘 띄지도 않지요. 그 외에도 후손을 지키기 위한 잣나무의 노력들이 있는데, 잣송이의 질긴 비늘조각들이 익기 전까지는 잘 벗겨지지 않는다거나 잣송이 겉에 송진을 아주 진하게 바르는 것입니다.

잣은 높은 나무의 가지 끝에 달립니다. 생장이 아주 왕성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잣을 따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고약한 일이어서 여러 방법이 동원됩니다. 한번은 원숭이를 들여와 잣을 따도록 훈련시켰는데 원숭이들은 곧 포기했지요. 털에 송진이 묻는 것이 싫어서입니다. 잣나무의 송진 전략이 원숭이에게는 잘 들어맞은 셈입니다.

광릉의 잣나무 숲에서 가장 막강한 적은 청솔모입니다. 쪼르르 나무로 올라가 송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에 잣송이를 잡고 까는 모습은 대단하지요. 저는 그런 청솔모가 너무 얄미워서 '호이'하고 놀래킵니다.

그러면 잘 까놓은 잣송이를 그만 떨어뜨리지요. 그렇게 해서 한 2송이쯤 빼앗으면 저희집 겨우내 수정과에 띄우는 고명에 쓰기에는 충분한 잣알이 나오니까요. 몇 개나 되냐구요? 주먹만한 잣송이 하나에는 비늘조각 사이사이 2개씩, 총 200개나 되는 귀여운 잣알이 들어 있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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