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올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였다.올들어 대기업의 벤처기업 투자규모는 최근 3∼4년 이래 최저 수준. 첨단기술 공동개발과 인재양성 등 장기적인 안목에서 벤처기업 투자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던 것과 달리 실제로는 눈앞에 당장 이익이 없다며 발을 빼고 있는 것이다.
특히 3·4분기를 비롯해 올해 대기업의 실적이 대부분 예상치를 상회했음에도 불구하고 벤처기업 투자를 줄여, 그렇지 않아도 각종 벤처 게이트의 여파로 자금줄이 끊긴 벤처업계는 최근 사상 최대의 돈 가뭄을 겪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이 1999년부터 현재까지 직·간접으로 투자한 벤처기업은 한국정보인증, 한국사이버페이먼트, 이오넥스, 콘텔라, 신지소프트, 티지코프 등 37개사. SK텔레콤이 투자한 벤처기업은 99년 2개사에서 2000년 22개사, 2001년 12개사에 이르렀지만 올해 들어서는 아이디어컬쳐 1개사로 뚝 떨어졌다.
투자 축소의 표면적인 이유는 "투자할 만한 마땅한 벤처기업을 찾을 수 없다"는 것. SK텔레콤 관계자는 "윈-윈(win-win) 효과를 기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퍼주는 식의 투자는 아무리 돈이 넘쳐 나는 기업이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KT가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KTF, KTH, 한국IT벤처 등과 2000년 8월 200억원 규모로 조성한 'KT 전력 펀드'의 올해 1∼9월 집행액은 17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64억3,000만원과 2000년 8∼12월 42억6,500만원의 25∼40%에 불과한 액수이다. KT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자금이 조기 소진될까 노심초사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운영 기한 연장을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닷컴 버블기에 '테헤란밸리의 금고'로 불렸던 삼성전자도 상황은 마찬가지. 삼성전자측은 "벤처기업 활용방안과 투자에 대한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며 "올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차마 공개하기 쑥스러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불투명한 경기전망 때문에 대기업마다 현금보유액을 늘리고 있어 벤처기업들은 올해보다 내년에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LG 계열사들은 꾸준히 벤처기업 투자를 늘려 눈길을 끌고 있다. LG전자, LG이노텍, LG마이크론, LG필립스LCD, LG필립스디스플레이 등 전자계열사들이 관련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한 '벤처클럽'은 연말까지 300억원 가량을 벤처기업에 쏟아 붓는다. 지난해와 2000년에 비해 각각 100억원, 150억원 늘어난 액수다. LG전자 관계자는 "2005년까지 2,000억원을 벤처기업에 투자할 방침"이라며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곧 LG에 대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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