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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위기론" 다시 고개/가계부실·세계적 디플레 相乘작용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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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위기론" 다시 고개/가계부실·세계적 디플레 相乘작용하나

입력
200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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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극복이후 수그러들었던 한국경제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한국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대내적으로는 부동산 등 자산가격 버블(거품) 붕괴에 따른 가계부실화 우려, 대외적으로 미국의 더블딥(경기 일시회복후 재침체) 가능성 등에 따른 세계적인 디플레이션(물가하락속 경기침체 현상) 우려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1980년대말 스웨덴·핀란드식 금융위기', '90년대초 일본식 장기불황', 심지어 '97년말 금융위기의 재현' 등 다양한 형태의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며, 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위기 바이러스 많다

우리경제에 위기 징후가 팽배해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부동산가격의 거품이 빠지면서 나타날 '부채 디플레' 가능성. 무엇보다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상태에서 부동산가격이 급격히 떨어질 경우 담보가치 하락으로 채무연장(차환)이 어렵게 되면서 갖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특히 가계 자산 감소로 상환부담이 가중되면서, '부동산 매물 급증→부동산 버블의 급속한 붕괴→가계파산·금융기관 부실'의 악순환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경우 80년대말 부동산·주식 매입용 대출붐 이후, 긴축정책으로 자산가격 버블이 급격히 꺼지자 은행들이 4∼5년동안 부도위기에 내몰렸던 쓰라린 금융위기 경험을 갖고 있다. 일본도 나라전체가 10여년동안 장기불황으로 고통받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콜금리 인상에 반대했던 이유도 가계의 이자부담 급증·자산가치 급락에 따른 악순환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김경수(金慶洙) 교수는 "현재의 가계부채 수준과 증가속도를 보면 위기상황 도래는 확실하다"며 "어떻게든 집값은 더 이상 오르지도, 폭락하지도 않을 거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 박사는 "예상되는 위기는 가계부문의 과도한 채무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 부채 디플레에서 비롯되고 있다"며 "지나치게 자금흐름을 죄면,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충격을 줘 상당한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대 이라트전쟁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유가가 급등하고, 세계경기도 위축될 조짐을 보이는 것도 우리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전 IBRD부총재)는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중국의 저가 공산품 밀어내기로 물가하락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며 세계적인 디플레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 둔화조짐일 뿐이다

그러나 정부와 또다른 경제전문가들은 금융위기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경부관계자는 "현재의 가계부채 수준은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에 있다"며 "부동산 버블도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위기론을 반박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權淳旴) 박사는 "가계부채가 200조원, 금리가 연 13∼14%였던 97년말 환란 때와 금리가 6∼7%이고, 가계부채가 400조원인 지금을 비교하면 가계 이자부담은 큰 변동이 없을 뿐 아니라 향후 금리가 상승해도 큰 폭으로 오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물론 부채 증가속도가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감독당국의 미시적인 대책으로 조절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금융연구원 이동걸(李東傑) 박사도 "스웨덴이나 일본은 위기 당시 부동산 가격이 1년새 30∼40%씩 살인적인 속도로 떨어진 데 반해 주택 수급구조가 다른 한국은 이 가능성이 낮다"며 "금융기관의 누적된 부실채권이 거의 정리되고 있고, 가계부실은 환란 때 기업부실과 비교하면 파괴력이 적다"고 말했다.

더욱이 세계경제 침체 가능성도 회복국면의 지연으로 봐야지, 위기 조짐으로 단정하는 것은 비약이라는 주장도 많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曺東徹) 거시경제팀장은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따른 디플레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한국이 잠재성장률 이하 둔화국면을 3∼4년 지속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를 위기라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제금융센터 김창록(金昌錄) 소장도 "미국의 더블딥 가능성이 연초 20∼30%에서 다소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다"며 "국내 자산버블 붕괴와 대외경제 불안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위기가 발발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 정책수단 뭐가 있나

자산가격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가 꺼내 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는 금리 인상 등 통화 정책이다. '금리 인상 → 가계대출 축소 → 부동산 유입자금 축소 →자산가격(부동산값) 상승 둔화 내지 하락'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긍정적 효과보다 훨씬 큰 부정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가 가속화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내수와 수출이 모두 둔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금리 인상 조치는 자칫 경기 침체를 부추기는 촉매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이미 자산가격 버블이 최고조에 달해있는 만큼 금리를 높일 경우 버블의 급속한 붕괴가 진행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성균관대 김경수(金慶洙) 교수는 "선제적 금리 인상은 이미 실기했다"고 강조했다.

소비 위축, 수출 둔화, 투자 회복 부진 등 '침체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금리 인하, 재정 지출 확대 등의 경기 부양책을 동원하기도 마땅찮다. 당장 유동성 증가로 자산가격 거품을 더욱 확대시킬 우려가 높은데다, 재정 부실화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 박대근(朴大根) 교수는 "인플레와 디플레 요인이 복잡하게 혼재돼 있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실탄(거시정책)은 아껴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 시점에서 정부의 정책 대응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안정 대책 등 미시 정책으로 최대한 가계 대출 증가를 억제하고, 부동산 가격을 끌어 내리는 수밖에 없다. 버블을 서서히 없애는 것이 최선이다"고 말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7일 '3·4분기 경제동향'에서 "시장에 이미 급증한 가계 대출의 건전성 우려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각종 조치들이 현장에서 엄격히 적용되고 있는지를 면밀히 점검하고 신뢰성 확보를 위해 일정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또 "재산세 과세표준 현실화 등 부동산 관련 세제의 추가 개편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구조적으로 안정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80년대 日·스웨덴

자산가격 붕괴에 따른 경제위기는 '시중 유동성 확대 → 부동산 및 증시로의 자금의 급격한 이동 →자산가격 급상승 →정부의 긴축정책 →자산 버블 붕괴 →은행 부실화 및 경기 침체'의 경로로 진행된다. 자산가격 상승의 정도와 속도에 따라, 또 선제적 정책 대응 여부에 따라 위기가 현실화하기도 하고, 해소되기도 한다. 자산가격 상승이 생산성 향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긴축으로 대응할 경우 성장을 제약하지만, 반대로 버블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히 대응하지 않을 경우 버블 확산과 붕괴가 불가피하다.

자산가격 붕괴가 가장 혹독한 결과를 초래한 나라는 두말 할 것 없이 일본이다. 시발이 된 것은 1985년 9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G5'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간의 이른바 '플라자 합의'. 미 달러화 고평가로 국제적인 무역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지자 달러화에 대한 주요국 통화를 평가 절상키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엔화 절상과 공정할인율(금리) 인하 등의 국내 수요 진작책을 폈고, 이 같은 금융완화 조치는 83년 무렵부터 상승세를 타던 주식과 토지 등 자산가격의 가파른 상승으로 이어졌다. 주식시장에서 85년말 1만5,000엔을 밑돌던 닛케이 지수는 89년말 4만엔을 넘어섰고, 부동산 시장에서 85년말 6대 도시 상업지역 지가지수가 30 내외에 그쳤지만 90년에는 105까지 치솟았다.

일본은 89년 중반 무렵 뒤늦게 금리 인상과 부동산 대출 규제 등 정책 기조를 긴축으로 선회했지만 이미 '버블'은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거품이 급속히 붕괴되면서 주가는 다시 1만5,000엔 대로 폭락(최근 8,000엔선 붕괴)했고 지가도 40 이하로 떨어졌다. 실물 경기도 침체 국면에 돌입하면서 금리를 낮추고 낮춰 '제로 금리' 까지 내려도 침체에서 허우적대는 장기 불황에 접어들었다.

80년대 후반 스웨덴이 밟은 경로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가 호황 국면에 있던 80년대 중반 금융 및 외환자유화를 추진하면서 시중 유동성이 넘치기 시작했다. 은행 대출의 50% 이상은 부동산 관련 대출에 집중됐고, 풍부한 유동성은 주식 매입 열기로 이어졌다. 85∼89년 주가는 세배 가까이 상승했고, 상업용 부동산가격도 두 배 이상 뛰었다.

위기를 느낀 스웨덴 정부는 89년 금리 인상, 세제 개혁 등 긴축 정책으로 선회했다. 이로인해 자산 가격이 급락하는 부작용이 초래됐고, 이는 담보 가치 폭락에 따른 은행 동반 부실로 이어졌다. 정부는 무더기 도산 위기에 빠진 대형 은행들에 대해 완전 국유화 조치를 취하는 등 신속하고 투명한 '극약 처방'을 동원, 90년대 중반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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