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개발의 실체가 불명확하지만, 이번 핵 파동은 과거의 전례를 참고할 때 북한과 미국의 대응에 따라 크게 3가지 방향으로 전개될 공산이 있다.우선 1998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금창리 지하 핵 시설 사건과 같이 북한이 의혹을 해명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이 방식은 무엇보다 북미 양측의 노력과 양보를 전제로 한다. 금창리 핵 의혹은 99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페리 프로세스'로 대변되는 관계 정상화 안을 제시했고, 북한이 반대 급부로 미국 관리들의 현지 방문을 수용함으로써 해소됐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실제로는 무기급의 우라늄 농축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뗀 뒤 생색을 내면서 미국 당국의 조사에 응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관측에는 북한의 핵 개발 수준이 미국이 우려하는 선 이하일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있다. 그러나 북한 핵의 실체가 '의혹'이 아닌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정황을 감안하면, 정치적 타협을 통한 해결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이번 사안을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북한이 미국의 발표대로 핵 개발 사실을 인정하고 나아가 포기 의사까지 표명할 경우 남아공 방식을 따를 수도 있다. 남아공은 핵무기 개발·보유 사실을 시인한 뒤 91년 9월부터 2년 반 동안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150여 회의 사찰을 받았고, 핵 시설을 해체했다.
북한이 미국측에 핵 개발을 시인한 이면에는 이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의지가 포함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경우 북한은 자발적으로 핵 의혹 시설을 제거한 뒤 IAEA의 사찰을 받는 수순을 밟게 된다. 다만 북한이 조건 없는 핵 시설 제거가 아니라 전력 보상 등 대가를 요구할 경우 사태는 아주 복잡해진다. 부시 행정부가 경수로 2기를 지어주고 중유를 제공한 대신 핵 동결을 약속 받은 94년 영변식 해법을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은 북한이 파키스탄, 인도처럼 비밀리에 핵 개발 완료를 선언하거나, 자위적 수단이라며 핵 개발 강행을 천명하고 사실상 국제사회에 도전장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카드는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제재를 자초하는 무리수이다. 이 경우 미국은 과거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오시리크 핵 발전소를 정밀 폭격한 것처럼 군사적 대응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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