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미국이다. 1998년 국내 처음으로 '태왕북벌기'를 대만 만화잡지 '와오'에 연재한 만화가 형민우(29)씨가 미국시장 공략에 나선다.
최근 국내에서 먼저 출간된 판타지 만화 '둠 슬레이브'(G& S 발행)는 지난해 미국 출판사 파워하우스와 계약, 12월 미국 전역에서 출간할 예정인 작품. 회당 24페이지 분량으로 4회까지 내놓은 뒤 독자 반응에 따라 계속 발간한다. 현재 미국에는 이태행씨의 '앤티크 블러드', 임광묵씨의 '더 섹트' 등이 출간돼 있다.
사실 그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미국적 화풍과 이야기'의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그림과 정지화면으로 남자 영웅 이야기를 헤비메탈 분위기로 진행하는 점이 꼭 닮았다. 99년 대한민국 만화문화대상 출판부문 신인상을 안긴 대표작 '프리스트'도 미국 서부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신부와 악마의 피 튀기는 대결을 그렸다.
"태어나서 처음 접한 만화가 미국 만화 '헐크' 와 '코난'이었어요. 엄청난 힘과 남성성에 반해버렸죠. 그리고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산 시내 책방을 돌아다니며 구한 미국만화를 '마르고 닳도록' 보았지요. 지난해 파워하우스의 재미동포 만화 프로듀서 에디 유도 그러더군요. '당신 그림이면 미국에서도 통한다'고요."
'둠 슬레이브'는 과학력을 총동원해 만든 생체병기 둠 슬레이브와 수천 년에 걸쳐 검법의 극한점을 찾아낸 동방의 무사집단 트로이탄과의 대결을 그린 작품. 1부에서는 트로이탄이 악마의 상징 둠 슬레이브를 전멸시키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둠 슬레이브 1명이 트로이탄 비전의 검법을 익혀 재등장하는 것으로 끝난다. "선과 악은 끊임없이 되풀이 한다는 것을 둠 슬레이브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가 '파괴의 노예'라고 이름 붙인 둠 슬레이브의 외모. "멋있게 그린 것인데 남들은 기괴하다고 한다"는 말처럼, 도끼와 칼을 든 4개의 팔은 피부도 없이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250㎝에 달하는 거구의 두 눈에는 눈동자가 없다. "어렸을 적 보았던 사천왕상의 이미지를 옮겼어요. 악을 응징하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던 거죠. 왜 팔이 4개냐고요? 닥치는 대로 아무 거나 집어 싸울 수 있잖아요."
이 작품에 들인 시간과 공도 놀랍다. 지난해 6월 계약체결 후 틈나는 대로 그렸지만 이틀에 1컷 밖에 못 그렸다. '프리스트'를 아직도 만화잡지 '소년 챔프'에 연재 중이기도 하지만, 서울 은평구 역촌동 작업실을 가득 메운 피규어(프랑켄슈타인 스폰 데빌맨 등 주로 반인반수를 형상화한 기괴한 서양인형) 600여 점을 이리 저리 꼼꼼히 살펴보는 데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 탓이다.
"부산 금성고 졸업 후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혼자 배우고 그려야 했어요. 만화를 따로 전공한 것도 아니고, 선배 작가의 문하생 시절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죠. 다행히 93년 단편 '치씨부임기' 이후 계속 잡지에 제 작품이 연재돼 그림이 발전할 수 있었죠. 공 들인 만큼 '둠 슬레이브'가 미국에서도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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