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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부시의 오만, 김정일의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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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부시의 오만, 김정일의 오기

입력
2002.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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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특사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켈리는 북한의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의 증거를 제시하고 고자세로 이를 제거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함으로써 미국에 대하여 정공법을 구사하는 오기를 보였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미국을 당혹과 긴장의 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하였다. 이제까지 핵문제와 관련하여 이 같은 대담한 정공법을 구사해 온 나라가 없었다. 대부분 핵개발 사실을 부인하면서 강력 반발하거나 실제로 핵실험을 통해서 핵무기 개발 능력을 시위하면서도 그것은 평화적 이용이라고 발뺌을 하는 사례는 있어도 '그래 있다. 어쩔래'하는 '막가파'식 오기를 부린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이번 켈리의 방북에서 불거진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문제는 미국의 대북 압박 외교의 부정적 산물이다. 핵무기는 묘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핵무기 자체가 갖는 엄청난 살상 능력에서 비롯된다. 핵무기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낌새만 보여도 이것은 상당한 외교적 지렛대로 작용하게 된다. 북한이 이 지렛대를 활용해 다양한 이익을 챙긴 것이 1994년의 제네바 북미 합의의 결과로 나타났다. 2기의 경수로와 상당한 양의 중유를 북미 핵협상에서 건졌다. 당시 북한의 핵문제도 미국 스스로의 오만함이 키웠으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렀던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은 북한을 밀어붙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북한의 핵문제를 더욱 이슈화 시킴으로써 북한의 핵카드를 제거하기는커녕 더욱 키워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 핵문제의 심각성과 북한 체제의 독특성을 이해하고 신중하고 단계적인 접근으로 북한의 핵카드를 축소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핵문제는 일거에 제거할 능력이 없으면 키우지 말아야 한다. 특히 북한의 경우 완전한 폐쇄체제로 남아있기 때문에 '모호성 정책'으로 일관할 경우 핵카드를 용이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무시하고 축소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실질적인 핵협상은 가능하면 은밀하게 추진되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일 수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지 못했다. 무조건 북한의 핵문제를 키워놓고 해결도 못하면서 '카드의 효능'만 키워 놓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했다.

이번 미국의 북한 핵문제 접근만 해도 그렇다. 미국은 94년의 북미 핵협상을 교훈으로 삼아 보다 유연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도 거듭 강하게 밀어붙임으로써 북한을 자극하였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이라크식 군사공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강경태세를 견지해 왔다. 이번 켈리의 방북에서도 북한측의 반응을 보면 압박적 외교술을 구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에 맞서 북한은 핵 모호성 정책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핵개발 자체를 시인하는 '핵 고백 전술'을 구사함으로써 미국을 딜레마에 빠트려 버렸다. 북한의 이러한 환경 조성으로 미국은 스스로 운신 폭을 상당히 좁게 만들어 버렸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인했다는 사실은 북한이 핵개발 과정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핵개발을 완성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자아내면서 그들의 핵카드 효용성은 한층 더 증대되었다.

미국은 이제 북한의 핵개발이나 핵무기 보유 가능성에 대한 군사적 고려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즉 북한을 핵 보유국에 준하는 위치에 올려놓고 협상을 추진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라크와 같은 군사적 공격을 선택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대화 자세로만 일관할 수 없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고민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오만'과 김정일의 '오기'가 맞닥뜨림으로써 또 한번의 한반도 핵위기 상황이 도래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정 영 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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