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개발 시인 파문으로 격랑에 휩싸인 한반도 정세는 19∼22일 평양서 열리는 제8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첫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남측은 이 자리에서 북한 핵 개발 문제를 공식 제기할 태세이고, 북측도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세의 핵심변수로 등장한 핵 문제에 대해 북측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이번 회담의 성패는 물론이고, 향후 남북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이 자리는 핵문제가 터진 직후 북한이 외부와 갖는 첫 고위급 접촉이어서 주목된다.
남측은 정공법을 택했다. 북한이 즉각 무조건적으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선행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남측의 확고한 입장이다. 수석대표인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은 18일 "북한에 모든 핵 관련 의무를 지킬 것을 강력히 촉구할 것"이라고 밝혀 핵 의혹 시설 제거를 요구할 방침을 시사했다
정부는 일단 경의·동해선 연결 등 합의사항을 예정대로 이행한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경제협력 등을 핵 문제와 연계해 동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회담을 통해 각종 합의사항의 이행을 총점검하려 했으나, 핵 파문에 묻혀버릴 것 같다"면서 "핵을 둘러싼 실랑이로 개성공단 등 다른 의제는 논의 자체가 안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북측이 이번 회담에서 속 시원하게 핵 의혹을 해명할 것 같지도 않아 더욱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금껏 핵 등 군사 문제에 관한 한 북미간 현안이라고 주장해온 북측의 태도를 감안하면, 핵 문제를 아예 의제에서 제외하려고 나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북측의 핵 개발 시인은 91년 말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위배된다"면서 "북측이 이 문제를 비켜나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측이 반응을 보이더라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등 완화된 자세보다는 핵 개발 자체를 부인하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북측은 한발 더 나가 대북 적대시 정책 등을 펴고 있는 미국에 대한 남측의 태도, 한미일 공조의 부당성 등을 지적하면서 주한미군, 국가보안법, 주적(主敵) 문제 등으로 맞불을 놓을 공산도 있다.
이 경우 DJ 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고위급 접촉으로 간주돼 온 이번 회담은 9·11 테러 이후 한반도 정세에 대한 시각차로 결렬된 6차 장관급 회담의 전철을 밟게 된다.
물론 북측이 핵 개발 시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면서 해결 의지를 보이면 남북관계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정 장관은 "미국이 의혹을 제기하자 북한이 순순히 시인한 점을 주목한다"면서 북측의 전향적 입장 개진을 은근히 기대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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