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즈카 오사무 지음·김미영 옮김 황금가지 발행·1만3,000원'정글 대제'(한국 제목 '밀림의 왕자 레오') '철완 아톰'(우주소년 아톰) 등 300여 편의 작품을 남겨 일본 만화계의 신으로 추앙 받고 있는 작가. 만화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에 맞서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나갈 길을 제시했던 선구자.
바로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蟲·1928∼1989)다. '만화가의 길'은 데즈카 오사무가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자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 자서전이다. 만화의 거장(巨匠)답게 1950년대 이후 일본을 세계 최대의 만화 왕국으로 만든 대표적인 만화가들과의 교우가 실려 있어 그의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일본 만화의 역사가 한눈에 펼쳐진다.
책은 그가 디즈니의 선진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만화가 데뷔 시절을 거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변신하기까지 겪었던 다양한 경험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오사카 태생의 데즈카는 어린 시절 만화영화 광(狂)이었다. 아침에 빵과 상영 횟수 만큼의 표를 사서 극장에 들어가면 마지막회가 끝나서야 나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디즈니의 '백설공주'는 50번, '밤비'는 80번도 넘게 보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규슈에서 마지막으로 개봉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비행기로 규슈까지 날아간 적도 있다.
데즈카는 오사카제국대학 의학부 2학년때 '마이니치 소학생신문'에 네 컷짜리 만화를 연재하면서 만화가로 데뷔했다. 그는 훗날 의학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의사의 길을 걷지 않는다. 환자를 보는 일보다 만화를 그리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데즈카는 46년부터 10년간 종이에 그리는 만화에 열중했고 '잃어버린 세계' '메트로폴리스' 등으로 명성을 얻었다. 52년 월간 만화잡지 '만화소년'에 '철완 아톰'을 연재하면서부터 만화가로서의 황금기를 맞았다. 이후 중세를 무대로 한 '리본의 기사'(사파이어 왕자), 최초의 TV 컬러판 애니메이션 '정글 대제',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블랙 잭' 등을 잇따라 쏟아냈다. 생명의 존귀함, 전쟁의 무의미함, 꿈과 희망이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테마였다.
귀여운 로봇 주인공 아톰의 탄생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술에 취한 미군 병사에게 처참하게 짓이겨졌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것은 내 만화 주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지구인과 우주인의 알력 싸움, 이민족 사이의 분쟁, 인간과 동물 사이의 오해, 로봇과 인간과의 비극…. 아톰의 테마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가 패전의 암울함에 빠졌던 전후 일본 문화의 우상이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만화에 영화적 수법을 도입해 만화의 표현 능력을 놀랄 만큼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에게는 수많은 문하생들이 몰려 들었다. 일본 극화 만화의 창시자로 1965년부터 현재까지 '고르고 13'을 연재 중인 사아토 다카오, '도라에몽'의 작가 후지모토 히로시와 아비코 모토오, '요술공주 세리' '철인 28호'의 요코야마 미츠테루, '가면 라이더' 시리즈로 일본 특수 촬영 영화의 맹아를 싹틔웠던 이시모리 쇼타로 등이 만화를 배우기 위해 그를 찾았다.
'철완 아톰'과 관련한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1951년 4월 탄생한 아톰 이야기의 모티프는 크리스마스 섬에서 있었던 수폭 실험에서 얻었다. "이 기술을 유용하게 쓸 수 있다면 하는 바람에서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사용하는 가상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고 데즈카는 설명한다.
아톰의 인기가 워낙 높아, 어쩌다 어린 아이가 2층 지붕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자신에게 비난이 쏟아져 감당키 어려웠다는 회고담도 들려준다.
1963년 시작한 TV 만화 '아톰'은 4년간 방영됐으며, 63년 말 미국 3대 네크워크 중 하나인 NBC TV에 52회분이 방영되었다. 미국에서는 '아스트로 보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는데, '아톰'이 '방구'를 의미하는 은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은 만화가의 자서전답게 쉽게 읽히며 유머 넘치는 내용이 곳곳에 실려 있다. 데즈카가 어느날 미국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으로부터 SF영화를 함께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데즈카는 "저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260명이나 있어서 이곳을 비워둘 수가 없다"며 정중한 사양의 편지를 보냈다. 답신으로 돌아온 큐브릭의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당신에게 가족이 260명이나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260명이라니…."
그는 만화에 대한 일반인의 선입견에 맞서 "어른들은 단순히 현상면에서의 비판을 할 뿐이지 어린이가 왜 만화를 보는가 하는 본질적 문제는 무시하고 있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데즈카는 자신이 그리는 만화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데즈카는 책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앞은 캄캄하고 불합리하며 불안정한 현대 생활! 울적함을 가장 민첩하고 손쉽게 그리고 가장 분명하게 주위에 호소하는 수단, 그것이 결국 만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영화기자 yaa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