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드컵 때의 '대∼한민국' 함성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부산아시안게임에서도 그 함성이 울려 퍼졌다. 피땀어린 노력 끝에 메달을 딴 선수들의 눈물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런데 TV채널을 돌리면,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이전투구'가 한창이다.우리는 월드컵이 끝나자 '대∼한민국'에 결집된 우리의 역동적 에너지를 국운 상승의 기운으로 삼아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다이내믹 코리아'를 국가 브랜드로 만들어야 하며, 이번 만큼은 88올림픽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포스트 월드컵' 대책들이 정부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정부는 7월 월드컵 '4강 신화'를 '경제 4강'으로 승화시키고 국가 이미지를 꾸준히 향상시켜 나간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10년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이 되기 위한 각종 경제정책과 문화국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대책, 국가 이미지 제고 방안 등을 내놓았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야구장의 관중이 축구장으로 옮겨갔고,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고, 주식이 폭락을 거듭했고, 국정감사가 '대선 전초전'으로 얼룩졌다. 게다가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스포츠에 열광하고 있으니, 이것이 과연 '포스트 월드컵'인가.
우리는 88올림픽 이후 집값 상승 등 국내 경제에 거품이 끼면서 적지 않은 후유증을 겪었다. 또 5년 전, 태국에서 아시아 외환위기가 시작됐을 때 정치권은 지금처럼 대선 경쟁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고 결국 그 해 말 치욕적인 'IMF 사태'가 왔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포스트 월드컵' 대책의 가시적 성과를 단기간에 기대할 수는 없다. 이 대책이야말로 중장기 과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과제들이 지금 어떻게 추진되고 있으며, 그 밑그림이 제대로 그려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또 예상을 뛰어넘은 월드컵의 성과에 고무돼 '포스트 월드컵' 대책을 늘리는데 급급했다면, 지금도 늦지 않다. 이를 재정비해야 한다.
7월 정부가 발표한 종합대책 중엔 경기장 활용을 위한 축구단 창설, 해외입양아 한국문화 뿌리찾기 사업, 부산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에서의 '코리안 서포터스' 운영 등도 포함되어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는 월드컵 빌리지, 월드컵 기념관, 월드컵 공원, 초대형 분수대 등의 건립 계획을 앞 다퉈 발표했다.
외형으로 월드컵을 기념하려는 복고주의적 발상은 재고되어야 한다.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한 미래지향적 안목이 요망된다. 브랜드는 인지(awareness)와 친숙(familiarity)의 두 단계를 거쳐서 형성된다. 이번 월드컵은 인지를 거쳐 친숙으로 가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에 문화적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우리가 외환위기에 처했을 때, 프랑스의 문화비평가이자 경제학자인 기 소르망은 "한국이 겪는 위기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내세울만한 문화적 이미지 상품이 없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음미해보아야 할 대목이다.
김 충 일 아리랑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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