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지역의 명문 스탠퍼드 대학 구내에 우뚝 솟은 탑이 있다. 1941년 개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높이 95m의 '후버 타워'(Hoover Tower)는 이 학교 1회 졸업생인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국제정치에 있어 유달리 '평화'를 내세웠던 그를 기려 탑 꼭대기의 종(鐘)에는 '오직 평화를 위해 종을 울린다'(For Peace Alone Do I Ring)고 새겨져 있다. 마치 그 전해에 출판된 E.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이.■ 임기 첫해인 1929년 10월29일 뉴욕의 증권시장이 무너지면서 비롯된 대공황으로 인해 후버는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꼽힌다. 아이오와주의 시골마을에서 대장장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찍 부모를 잃었으나 고학을 거듭하는 노력 끝에 일약 세계적인 토목건축가로 성공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유럽의 난민 구호활동을 전개하면서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몇몇 장관직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 대통령에 취임하기 훨씬 전인 1919년, 후버는 모교에 5만달러를 기증, '전쟁 혁명 평화에 관한 후버연구소'를 세우도록 한다. 193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대패한 뒤에도 무려 32년을 살았지만 후버의 이름은 대중의 기억에서 차차 잊혀져 갔다.
오직 그가 재임중 계획했던 '후버댐'에만 이름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기증한 연구소는 아직도 건재해 스탠퍼드 대학의 명물로 사랑받고 있다.
■ 김대중 대통령이 1994년 설립한 아태평화재단이 연세대에 기증된다는 소식에 스탠퍼드 대학의 '후버 타워'가 생각났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평화'를 중요시했다는 것도 대단한 우연의 일치다.
당초 만들어질 때의 목적이 무엇이었고, 대통령 당선 이후 각종 스캔들로 얼룩졌다는 등의 일은 이제 뒤로 접고 아태재단이 새롭게 태어날 계기를 찾은 것이다. 먼 훗날 세월이 흘러 아태재단이 연세대의 또다른 명물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