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슈와 현장/"과외방"까지… 수능 족집게 과외 극성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슈와 현장/"과외방"까지… 수능 족집게 과외 극성

입력
2002.10.18 00:00
0 0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20여일 앞두고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전례없는 '족집게 과외' 열풍이 휘몰아치고있다. 족집게 과외는 매년 이맘때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고 있지만, 올들어서는 형태와 규모에서 예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신종 과외가 속속 선을 보이거나 과목당 최고 500만원을 훌쩍 넘는 초고액 과외가 판을 치고있다. 일선 고교에서는 '광풍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말도 나돈다.▶족집게과외 온상 '과외방'

최근 가장 활개치는 족집게 과외 장소는 주로 '과외방'. 1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건너편의 A연구소. 외부에서 보면 사설 연구기관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신종 족집게 과외방이다. 30여분동안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무려 20통이 넘었다. 과외비는 수능시험 때까지 6회(회당 1시간30분∼2시간) 강의를 기준으로 과목당 평균 130만원을 받는다. 강사에 따라서는 200만∼300만원을 받기도 해 3∼4개 과목만 들어도 학부모 부담이 1,000만원을 넘는다.

서울 W고 앞의 B과외방, 롯데백화점 강남점 앞의 K과외방 역시 과목당 120만∼200만원씩 받고있다. 학원가에서는 대치·도곡·서초동 일대에만 이 같은 고액 과외방이 15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이들은 대부분 '학원'이 아니라 '갽갽입시연구소', '갽갽교육', '입시전문시스템' 등의 간판을 내걸고 3∼4평짜리 오피스텔 등에 책상 2∼3개씩을 놓고 학생들을 가르치고있다.

▶입시학원들도 대거 가세

소규모로 운영하면서 짭짤한 수익을 올리던 입시학원들도 '한건'을 노리고 족집게 과외 행렬에 뛰어들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입시학원은 8월 대대적인 '내부수리'를 했다. 강의실을 5명 정도가 수업할 수 있도록 쪼갰다. 문패도 'XX 연구소'로 바꿨다. 이 학원 관계자는 "수능이 다가오면서 찍기 과외를 원하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족집게 과외 강사들에게 임대료를 받고 빌려주는 학원도 생겼다. 1칸당 한달 임대료가 보통 500만원 정도. 대치동 O학원측은 "소규모 학원들 중 상당수가 과외방쪽으로 돌아섰고, 수입면에서 훨씬 낫고 운영도 수월하다"고 귀띔했다.

▶족집게 강사 '스카우트'

강남의 재력있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과외 강사를 아예 불러들이는 '족집게 스카우트'가 확산되고 있다. 학부모 여럿이 모여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의 장소를 제공한 뒤 보통 과목당 500만원을 건네는 일종의 '맞춤형 과외'다. 재수생 아들을 둔 학부모 전모(46)씨는 "수험생 학부모 12명과 돈을 모아 수학 영어 강사를 '고용'했다"며 "한달 기준 2과목에 1,000만원을 주고있다"고 말했다.

▶열풍의 원인은

전문가들은 올해 유독 족집게 과외가 극성을 부리는 이유를 수험생, 특히 재학생 학력저하에서 찾고있다. 9월 실시된 전국 첫 고교모의학력평가결과가 말해주 듯 고3 재학생 학력이 역대 최저 수준이어서 불안감을 느낀 학생들의 과외 의존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족집게 과외의 효능. 입시전문가들은 족집게 과외가 반드시 수능 고득점으로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는 "족집게 과외가 통계에 근거해 자주 출제되는 문제유형을 짚어주는 효과는 있지만 수능 문제 유형이 해마다 다양해지는 경향에 비춰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다"고 충고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4과목 두달 과외비 1,250만원

재수생인 한준영(가명·19·서울 강남구 도곡동)군은 벌써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대학생 같은 생활을 경험하고 있다. 수능을 두 달 앞둔 지난 달부터 그 동안 다니던 대형 입시학원을 그만 두고 소위 '족집게 과외방'을 돌며 수업을 받고 있기 때문.

준영이가 받는 '족집게 과외'의 과목수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탐구영역 등 모두 4과목. 이 중 영어와 수학은 하루에 90분씩 1주일에 3번, 국어와 사회탐구영역은 1주일에 2번 수업을 받는다. 또 과목마다 받는 족집게 과외의 형태도 다르다. 가장 자신이 없는 수학은 같이 재수하는 친구들 어머니 몇몇이 특별히 고용한 유명강사로부터 받고, 영어와 국어는 보통 '과외방'에서, 사회탐구영역은 보습학원에서 은밀히 운영하는 강의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준영이의 두 달간의 과외비는 얼마나 될까. 물론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과목은 수학이다. 유명 족집게 수학강사로부터 두달간 강의를 듣는데 들어가는 돈이 600만원 가량. 준영이는 "돈이 문제가 아니지요. 나 보다 더 많은 과외비를 쓰는 아이들도 많아요"라고 말했다. 전문 과외방에서 받는 국어와 영어에는 각각 200만원과 300만원 정도씩 들어간다. 영어를 1주일 1번씩 더 듣기 때문에 이 같이 금액차이가 생긴다. 이 밖에 사회탐구영역에 들어가는 두달간 과외비는 가장 저렴한 150여만원 정도. 따라서 두달간 준영이에게 들어가는 족집게 과외비의 총액은 1,250만원 가량. 한달 평균 625만원. 준영이가 가고 싶어 하는 유명 사립대학의 1년치 등록금보다 많은 액수다.

/김기철기자

■ 출제교수·전문가 진단

"수능시험 출제원칙은 교과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폭 넓게 독서한 학생이면 풀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를 제출하는 것입니다. 단기간에 점수를 높이는 특별한 비결이 있을 수 없습니다." 수능시험 출제경험이 있는 교수들과 입시 전문가들은 "이해력과 사고력을 묻는 현행 수능시험에서 집중암기식 족집게과외는 별 효과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2002학년도 수능 출제위원장을 맡았던 서울대 안희수(安希洙·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출제진은 단순 암기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출제하지 않는다"며 "막바지 요점정리 역시 같은 주제에 대해 여러 교과를 연관시키면서 자기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야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동래구 용인고 박만제(朴萬濟) 진학부장도 "주말을 이용해 부진한 과목에 족집게 과외를 받고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게 있지만, 그 학생들에게 들어보면 여러 유형의 문제를 반복해서 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교사는 또 "그 동안 진학지도 경험에 비춰볼 때 다양한 독서를 한 학생이 내신은 좀 뒤지더라도, 수능시험에서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아 상위권 대학에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과외비와 성적향상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을 통해 발표되기도 했다. 연구에 참여했던 한 연구위원은 "조사결과 과외비용이 고액일수록 효과가 클 것이라는 일부 학부모들의 믿음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권영민(權寧珉·국문과) 교수는 "논술고사를 채점하다 보면, 심지어 여러 답안지의 특정문단이 똑 같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종합적 사고를 측정하는 논술시험까지 단기간의 족집게 과외로 점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 교육풍토가 어처구니 없다"고 말했다.

대성학원 이영덕(李永德) 평가실장도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족집게과외 유혹이 크겠지만, 차분히 다양한 유형의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크다"고 충고한다.

/정영오기자young5@hk.co.kr

■"과외신고제" 있으나 마나

족집게 고액 과외가 성행하는 이면에는 유명 무실한 '개인과외 교습 신고제'가 자리하고있다.

2000년 4월 도입된 개인과외 교습 신고제는 교습자가 주소지 교육청에 수강과목 인원 수강료 등을 신고토록 되어있지만 신고지와 영업장소가 다른 경우가 많아 관할 교육청의 지도감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신이 개인과외를 하고있다고 '자백'하는 족집게 강사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서울 강남교육청 관계자는 "과외방의 경우 설립 장소나 수업시간에 대한 규정이 없어 속수무책"이라고 실토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1월 현재 전국의 개인과외 교습 신고자는 고작 2만6,056명. 서울의 한 과외교습자가 고교생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월 150만원을 받는다고 신고한 것이 최고액일 정도로 신고액 또한 대부분 소액.

특히 전체 수강인원 19만7,453명 중 고액 과외가 많은 고교생은 7.5%에 불과했다. 교습신고를 하지 않은 강사에 대한 단속도 수박 겉핥기식이다. 지난해 8월 이후 과외 미신고자 적발 실적은 겨우 72명. 미신고자나 허위 신고자의 경우 1차 적발 때 과태료 100만원 이하→ 2차 교습중지 명령과 200만원 이하 벌금→ 3차 1년 이하의 금고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을 내도록 규정돼 있지만 신고 내용이 달라 적발된 경우는 한건도 없다. 세무당국은 5월말 끝난 개인과외 교습자 종합소득세 신고를 토대로 뒤늦게 누락사실을 확인하는 등 단속에 나섰지만 효과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김진각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