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주얼시장에 '탈미(脫美) 바람'이 거세다. 이지캐주얼과 힙합패션으로 대변되는 미국식 실용주의와 베이직 라인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주춤하고 유럽 스타일의 감성캐주얼을 표방하는 신규 브랜드들이 새롭게 주목받으며 북유럽풍으로까지 패션문화의 코드를 넓혀가고 있다.올 가을 시장진입에 성공한 대표적인 유럽스타일 캐주얼브랜드로는 쌈지가 내놓고 있는 '쌤', 닉스인터내셔널의 '콕스(COAX)', 지엔코의 '캐너비', 샘인터내셔널의 '2Bfree' 등이 있다. 올 봄여름 상품부터 선보인 데코의 '데얼스' 도 같은 군에 속한다. 남성, 여성용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는 유니섹스라인으로 전개되는 이 브랜드들은 하나같이 유럽, 그중에서도 런던의 거리패션과 하이패션을 적절히 섞어놓은 듯한 감각적인 스타일과 미묘한 색상배합을 특징으로 한다. 캐주얼이지만 보다 몸매를 잘 드러내는 방식으로 실루엣이 표현되는 것도 눈에 띈다.
탈미 유럽행 러시는 내년 봄시즌을 겨냥해 출범준비에 한창인 신규브랜드들에서도 뚜렷하다. 외환위기 여파로 4년 가까이 신규 브랜드 출시를 자제해왔던 패션기업 신원이 월드컵 이후 관심을 모으는 북유럽권 네덜란드의 문화를 담아 '쿨하스'를 내놓을 예정이며 (주)이클로제는 이탈리아 스타일의 '라이플', (주)에스제이플러스는 런던스타일의 '레이버스'를 출시한다. 또 대표적 중저가 이지캐주얼 브랜드중 하나인 '라디오 가든'을 내놓은 리얼컴퍼니는 캐주얼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북유럽 스타일의 브랜드 '애스크'를 새로 내놓는다.
캐주얼시장의 변화는 저렴한 가격과 기본형 아이템을 내세워 환란시대 젊은층을 사로잡았던 이지캐주얼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쿨하스' 사업본부 조춘호 이사는 "성별과 상관없이 우리나라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젊은이들의 패션마인드는 세계적인 수준"이라면서 "그러나 기존 캐주얼시장은 미국취향 이지캐주얼의 지나친 저가정책과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한 몰개성적인 상품구성 등으로 불만을 사왔다"고 지적했다. 한동안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혔던 이지캐주얼의 대명사 '지오다노'가 최근 매출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시장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꽃미남 열풍'으로 대변되는 감각적 젊은 남성 소비자들의 대거 등장도 캐주얼시장의 변화를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삼성패션연구소 서정미 패션기획팀장은 "예전엔 남자가 귀고리를 하고 나타나면 동성애자 취급을 했지만 지금은 개성과 감성의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패션도 꽃문양이나 자수, 프릴 달린 셔츠를 입는 것 등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이들의 패션감각을 받쳐줄만한 캐주얼들이 요구되고 있다. 결국 트렌드에 민감한 유럽스타일의 옷들이 일종의 틈새시장을 형성하면서 유니섹스 캐주얼군의 변화를 유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등장한 감성캐주얼들은 공통적으로 유럽스타일을 지향하고 있지만 패션코드를 어디에 맞췄느냐에 따라 미묘한 차이점을 보인다. 런던 스타일을 추구하는 '쌤'이나 아예 런던의 대표적인 패션가 이름을 딴 '캐너비' 등이 전위적이거나 키치적인 냄새가 풍기는 강한 이미지를 내세운다면 '쿨하스'나 '애스크' 등은 눈 별 마름모 등 북유럽 특유의 문양과 현대적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은 직선적이고 깔끔한 디자인에 감도 높은 색감을 내세운다. 패션관계자들은 캐주얼시장의 탈미·유럽행 바람이 국내 패션계에 보다 풍성한 색깔을 덧입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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