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차대조표 척척… 주부는 재무장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차대조표 척척… 주부는 재무장관"

입력
2002.10.18 00:00
0 0

전업주부 안경조(45·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지난 해까지만 해도 남편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대해 넌지시 상의를 해오면 "내가 뭘 알아, 그냥 당신이 알아서 해"라며 피해갔다. 결혼 초부터 재산관리는 남편이 전담한데다 꼬박꼬박 가져다 주는 생활비만으로도 부족함 없이 살림을 꾸릴 수 있었던 만큼 불필요한 신경을 쓰기 싫어서였다.그러나 최근 경제가 나빠지고 남편의 사업도 덩달아 침체에 빠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수입이 들쭉날쭉해지고 미래가 불안해지면서 남편한테만 너무 기대면 안 되겠더라구요. 나도 가정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재테크 등 계획을 세울 수 있겠다 싶어서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봤어요. 그동안 '돈'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한 눈에 드러나더군요."

직장여성 이정은(34·서울 동작구 대방동)씨는 최근 남편으로부터 빚이 3,000만원에 육박한다는 고백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회사원인 남편이 자신 몰래 마이너스 통장으로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한 것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처음엔 1,000만원이었던 빚이 몇 달 사이에 3,000만원으로 늘어난 것. 2년전 아파트를 살 때 얻었던 은행융자 외에는 빚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씨는 이 일을 계기로 가정내 자산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가계빚이 심각하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죠. 내친 김에 남편한테 '툭 터놓고 다 얘기해라, 우리 집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총점검해 보자'고 한 후 계산해봤더니 둘이 열심히 벌었는데도 빚정리하고 이런저런 대출금 제하니 2년전보다 재산이 오히려 줄더군요."

가계부채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가정내 자산평가의 필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다달이 현금 흐름을 기록하는 가계부와 달리 자산평가는 부동산과 동산 금융자산 등 모든 유무형의 자산과 부채를 특정시점의 시가를 기준으로 환산하는 것. 그런 만큼 가정의 재산규모나 동원가능한 돈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최근 여성들을 중심으로 가계 대차대조표 작성하기 바람이 부는 것도 직접 자산평가를 해봄으로써 가정경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추고 재테크에 뛰어들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이트 아줌마(www.zooma.co.kr)가 운영하는 아키아연대(아줌마가 키우는 아줌마 연대)는 최근 '너희가 돈을 아느냐'는 주제로 가계 대차대조표 작성법을 강의, 큰 호응을 얻었다. 강의를 기획한 남옥남 사무국장은 "주부들은 돈은 벌지 못하고 쓰기만 하는 존재라는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다 보니 알뜰살뜰 가계부 작성에나 신경을 쓰지 커다란 경제적 흐름엔 무지한 존재로 남기 십상이었다. 이번 강좌는 돈의 흐름을 이해하자는 차원에서 기획됐는데 참가자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강의를 들은 주부 강미선(35·서울 마포구 토정동)씨는 "그간 막연히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 정도 알고 지냈는데 대차대조표를 써보니까 자산규모가 벽보를 보듯 명확해지더라"면서 "막연히 살림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훨씬 장기적이고 큰 재테크 시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오정선 PB팀장은 "대차대조표를 쓰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시점마다 동원 가능한 자산규모를 정확히 알려준다는 점 외에도 일상의 소비생활을 좀 더 계획적이고 규모있게 꾸리게 해준다"고 말한다. 자산관리에 대한 개념을 터득하는 순간부터 지출요인이 생기면 순자산의 증가에 기여하는 지출이냐 아니냐를 항상 염두에 두게 된다는 것. 오 팀장은 "가정경제가 국가경제의 근간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소비생활의 주체인 여성들이 자산관리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국가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대차대조표 어떻게 만드나

대차대조표는 기업 회계용어이지만 쉽게 말하자면 '현재 가진 모든 빚을 다 갚고도 남는 재산이 얼마나 되는가를 알 수 있는 표'이다. 작성요령은 간단하다. 먼저 종이와 연필, 그리고 계산기를 준비한다. 그 다음 종이의 중앙에 선을 하나 그어 여백을 둘로 나눈다. 왼편에는 우리집의 재산을 쭉 적는다. 집이나 대지를 갖고 있다면 현재 시가, 자동차나 가구 보석 등은 현재 가치로 환산한 가격, 저축이나 저축성 보험 등 금융상품은 현재까지 불입한 총금액이나 잔액, 보유주식의 현재 가격 등이 기록대상.

오른편에는 부채를 적는데 내 집 마련할 때 받았던 대출금 잔액, 신용카드 미결제액, 자동차 할부금 잔액, 친지에게 꾼 돈이나 각종 할부대금 잔액 등 아직까지 갚지 못한 모든 부채를 망라한다. 이렇게 꼼꼼히 적은 뒤 왼쪽 재산의 합계에서 오른쪽 부채의 합계를 빼고 남는 것이 순자산. 만약 순자산이 마이너스라면 가계재정이 파탄상태라는 뜻이다.

대차대조표는 정기적으로 작성해 비교해 봐야 우리집 경제가 좋아지고 있는지, 나빠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쉽다.

또 가능한 상세하게 적어야 자산의 증감원인을 추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 야간대학원에 등록했을 때 그 등록금을 어떻게 충당했느냐가 자산증감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다른 부문의 지출을 줄이면서 월급을 쪼개어 쓰는 방법으로 처리했다면 아무런 자산의 증감이 없지만 저축예금을 깨서 등록금을 냈다면 대차대조표상 왼쪽 재산란에 있던 저축예금이 없어지거나 줄어들기 때문에 순자산 규모는 감소한다.

또 다른 예로 마이너스 통장으로 1,000만원을 대출받아 자가용을 샀다고 가정해보자. 대차대조표의 오른쪽 부채란에 1,000만원이 추가되는 반면 왼쪽 재산란에도 자가용이 추가되기 때문에 빚을 졌음에도 순자산 규모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 돈을 자가용을 사는 대신 여행경비로 썼다면 왼쪽 재산란에는 추가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순자산은 감소된다.

● 외환은행 오정선 팀장의 "작성5계명"

1.반드시 부부가 함께 작성한다

맞벌이 부부들은 흔히 아파트 구입이나 전세자금 마련, 정기예금 등 굵직한 자산운용은 서로 상의하지만 주식투자나 작은 규모의 카드대출 등은 상대방 모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솔직하게 털어놓고 자산평가에 임하면 예기치 못했던 부실을 알게 되고 대책도 그만큼 빨리 마련할 수 있다.

2.매년 1월 초에 전년도 12월 31일자 기준으로 작성한다

정월은 한 해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달성을 위해 자산을 분배하는 시기인 만큼 보다 명확하게 투자처와 시점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3.감가상각을 고려한다

대표적인 것이 자가용 승용차. 평가시점의 중고차 가격을 기준으로 해야 정확하다. 중고차 가격을 알 수 없을 때는 우리나라 사람은 통상 5년에 한번씩 차를 바꾼다는 통계에 근거, 구입한지 햇수로 1년이 지날 때마다 구입가의 5분의 1씩 감가상각해 가격을 산출한다.

4.목록은 세분할수록 좋다

부동산·동산·금융자산으로 나누고 금융자산은 다시 언제라도 입출금이 가능한 상품인가, 장기에 걸쳐 해약이 불가능한 상품인가를 확인한다. 대출을 받았을 경우에는 만기일이 언제이며 원리금을 다 갚고 있는가 아니면 이자만 갚고 있는가 등을 자세히 적는다. 목록을 세분할수록 대차대조표 상의 자산을 활용한 재테크가 수월하다.

5.총자산보다는 순자산의 변화에 주목한다

가정경제의 부실여부를 알려주는 것은 바로 순자산의 증감상태. 순자산이 증가했다고 해도 증가율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했다면 실제 자산규모는 줄었다고 봐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