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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71)14대 국회의장 시절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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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71)14대 국회의장 시절 ③

입력
2002.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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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 출범은 과거 정권의 의혹과 관련한 시비를 봇물처럼 터뜨린 계기가 됐다. 1993년 7월1일부터 열린 162회 임시국회는 12·12 사태, 율곡사업, 평화의 댐 등 세 사안에 대한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로 연일 시끄러웠다. 급기야 감사원은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에 관한 조사에 들어갔고 감사 결과 이종구(李鍾九) 이상훈(李相薰) 전 국방장관 등이 수감됐다.여당인 민자당은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소극적이었다. 나는 기자들에게 내 견해를 밝혔다. "이 세가지 의혹 사건은 이번 기회에 매듭을 지어야 한다. 국정조사는 국회법대로 재적의원 3분의1 이상이 발의하면 시작해야 한다. 다만 국정조사는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행해져야 한다. 전직 대통령은 필요한 경우 서면 질의·답변도 가능하다."

이 같은 나의 생각은 민자당을 당혹스럽게 했다. 황인성(黃寅性) 총리의 답변 문제에 이어 다시 한번 내가 중립적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야당이 전직 대통령 서면 질의·답변이라는 나의 중재안을 수용, 7월19일 문민정부 들어 최초로 국정조사권이 발동됐다. 국정조사는 대구 동을 및 춘천 보궐선거 등으로 다소 맥이 빠졌지만 어쨌든 과거 정권의 비리에 대해 국회 차원 조사가 처음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원칙적이고 중립적인 국회 운영을 다짐한 내가 국회의장으로서 부딪친 높은 벽은 새해 예산안 심의였다. 11월25일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9일간의 미국 방문에서 돌아온 후 비서실을 통해 내게 연락을 했다. "대통령께서 의장님과 점심을 함께 하자고 하시니, 외부에 알리지 말고 29일 12시에 들어오시랍니다."

나는 김 대통령이 나를 부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새해 예산안 때문이었다. 당시 여야의 대립은 첨예했다. 야당은 '쌀 개방 반대와 우루과이라운드 국회 비준 저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정부 여당을 압박했다. 새해 예산안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청와대 오찬이 예정된 29일은 공교롭게도 김 대통령이 방미 성과를 직접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한 날이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회담에서는 쌀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는 등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날 오전의 국회 본회의는 어수선했다. 야당은 본회의 참석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하다가 결국 김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되고 한참 지난 뒤에야 본회의장에 들어왔다. 김 대통령의 불쾌감은 쉽사리 예상할 수 있었다.

본회의가 끝난 뒤 얼마 있다가 나는 청와대로 갔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새해 예산안 문제를 꺼냈다. "이번 새해 예산안은 법정 기일 안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합니다."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밝혔다. "가능하면 기일을 지키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지금 여야가 대치하고 있으니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계속 법정기일 준수를 주장했다. "헌법에 법정 기일이 명시돼 있는 이상 이를 지켜야 합니다." 나도 지지 않았다. "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지만 만일 기일 안에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조항도 명시돼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는 연내에만 통과시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13대 국회에서도 예산안 통과 시한을 지킨 것은 단 한차례 뿐이었다는 등 과거 사례까지 구체적으로 들어가며 설명해도 김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안되겠다 싶어서 아픈 곳을 찔렀다. "대통령께서는 과거 야당 총재 시절 그렇게도 날치기에 반대하셨는데 지금은 왜 강행 통과를 고집하십니까?" 그래도 김 대통령은 변함이 없었다. "지금은 문민정부인 만큼 꼭 법을 지켜야 합니다."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물론 법정 기일을 지키는 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렇지만 무리하게 강행 통과를 하려다가 국회가 파행하면 곤란합니다. 차라리 며칠 늦더라도 야당을 설득해 협상을 통해 원만하게 통과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끝이 보이지 않는 평행선을 긋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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