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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法앞에 남성만의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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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法앞에 남성만의 평등

입력
2002.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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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여성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최근에는 법원에서도 여성 법관이나 여성 변호사를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판사나 변호사가 여성인 경우에는 방청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흘낏거리며 구경을 하는 분위기였지만, 요즘은 한 법정에 여성 법조인이 몇 명씩 되다 보니 그런 분위기도 사라졌다.여성 법조인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일부 남성 법조인들 가운데 여성이 판사가 되면 여성 편향적인 판결을 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법이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하는데 여성의 시각이 반영되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법관이든 추상적인 법조문을 구체적인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 가치관, 그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지배적인 윤리와 고정관념 등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률을 인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과학적인 의미의 객관성과 중립성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법률과 제도, 재판관행과 판결은 결코 가치 중립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노동법은 남성 임금노동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들이 대가 없이 행하는 가사노동에 대하여는 아무런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

그 결과 여성들의 가사노동은 아무런 가치 없는 것, 본능적인 것,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며, 남성의 임금노동과 비교해 볼 때 현저히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노동법은 임신, 출산, 육아와 가사노동의 부담이 없이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할 수 있는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의 임신, 출산, 육아는 예외적인 사유가 된다. 그러다 보니 여성의 임신, 출산은 암묵적인 고용기피 또는 해고사유가 되고 있다.

성폭력 범죄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법원은 합리적인 인간(남성)이 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정도의 저항이 없는 경우 피해자를 의심한다. 피해자가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저항하지 않는 경우 강간이 아니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호주제도, 부성주의, 부가입적주의 등 가부장적인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가족법이 남성의 관점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 지금의 법률과 제도, 재판관행과 판결은 남성 편향적이다. 법률이 지배하는 공적 영역이 남성들의 영역이었고, 아주 오랫동안 법을 만들고 적용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모두 남성들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 경제, 사회, 문화에서의 모든 권력이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법관도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인 남성 우월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수많은 법률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남성 편향적인 법과 제도, 관행, 가치관, 판결 등으로 인하여 아직 여성의 지위는 실질적인 평등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성 판사들의 증가로 여성 편향적인 판결이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하다니. 이런 것을 가리켜 기우(杞憂)라고 하던가.

진정한 양성 평등이 이루어지려면 법률의 제정과 적용, 해석 과정에 여성의 관점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여성의 관점을 법에 반영함으로써 기존의 남성 편향적인 법과 제도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고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대 법대 학생회가 온전한 법 해석을 위해서는 여성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며 여교수의 채용과 법 여성학 강의를 신설할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계기로 하여 남성 편향적인 법조계, 특히 법학 교육에서부터 변화의 바람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이 유 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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