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게임이 본격화하자 모이는 자리마다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품평이 한창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개 맘에 드는 후보는 없어도 열렬히 싫어하는 후보는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난 그 사람 정말 싫어, 그 사람 대통령되면 이 나라를 뜨고 싶어." 한 친구가 특정 후보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론을 펴자 "그 사람은 당사자보다 부인이 더 맘에 안들어" 다른 친구가 받는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다른 후보를 거론하며 "그 부인 정말 괜찮아 보이지 않니? 우리도 이제 그 정도 퍼스트레이디를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자연스럽게 미래의 퍼스트레이디 쪽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우리는 어떤 여성을 21세기의 첫 영부인으로 갖게 될까. 현명한 내조자였던 육영수여사형일까, 적극적 활동가인 힐러리형일까. 현재로선 후자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는 듯 하다. 후보 부인들은 하나같이 존경하는 퍼스트레이디로 육영수여사를 꼽고 있으니까.
하지만 30년 넘도록 이상적인 영부인상이 육여사에 머물러 있다는 건 한국사회의 보수적 여성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만 같아 아쉽기만 하다. 우리도 이제까지 8명의 영부인을 보아오지 않았는가. 하긴 그건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영부인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나, 바람직한 영부인상에 대한 공적 논의에 눈돌릴만한 여유가 우리에겐 사실 없었으니까.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역사박물관에는 영부인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퍼스트레이디의 정치적 역할과 공적 이미지’라는 제목의 이 전시실에는 40여 영부인들의 파티복에서부터 공적 활동까지가 그 시대 배경과 함께 흥미롭게 소개되어 있다.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모여있는 재클린 케네디 코너에서 눈에 익은 그녀의 멋진 정장들을 구경하며 “우린 언제 이런 것을 갖게 될까”며 아쉽기도, 부럽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최근 한 여성매체가 ‘영부인 후보들도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은 그래서 반갑게 들린다. 대통령의 으뜸가는 비공식 참모로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적, 사적 영역에서 영부인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것인데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얘기다. 아무 기준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가 조금 지나치다 싶으면 베개머리 송사니, 치마바람이니 비난하는 것보다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원하는 영부인의 모습을 瀏졺맛渼?것이다.
음, 난 어떤 여성을 택할까. 자기 견해가 분명하고 당당하되, 국가와 국민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사람이 좋겠다. 서민의 아픔과 고뇌에 항상 마음을 열고 있음이 자연스레 느껴지는 사람, 그리고 시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겸비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볼수록 미소가 우러나오는 사람, 대한민국의 대표 여성으로 내세워 손색이 없는 인물…. 아이쿠 내 욕심이 너무 과했나.
이덕규 자유기고가·기자 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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