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여성 11명이 자국 정부 지원을 받아 한국 기지촌 윤락업주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뉴스는 얼굴을 들 수 없게 한다. 오죽 원한이 맺혔으면 피해자들이 그런 일로 정부에 지원을 호소했겠는가. 필리핀 정부의 개입으로 이 사건은 국제이주기구(IOM)에 신고돼 이미 조사보고서가 IOM 본부에 접수됐다. 국제적으로도 톡톡히 망신을 당한 셈이다.보고서에 수록된 한 피해자의 일기는 상상도 못할 성 노예생활의 참상을 담고 있다. "엔터테이너로 일하면서 월 480달러씩 벌 수 있다"는 송출업자의 말에 속아 올 3월 말 한국에 온 피해자들은 처음부터 매춘을 강요당했다. 동두천 미군클럽 2층에 감금하고 강제로 매춘을 시키고도 업주는 임금을 주지 않았고, 밥을 하루 한끼씩 주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마구 때렸다 한다. 심지어 성병이 걸려도 약을 주지 않고 계속 매춘을 강요했다. "한국인은 모두 섹스광"이란 표현에 업주와 고객의 부도덕성이 함축돼 있다.
문제는 이 사건이 부도덕한 몇몇 업주의 횡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간단체들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기지촌과 환락가에 외국인 윤락여성을 고용한 업소는 수백개, 이들 업소에 고용된 외국인 여성은 1만명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러시아 여성들의 피해가 한러간 외교문제가 된 일도 있었다.
환락가에 외국인 여성이 이토록 많아진 것은 'E-6'라 불리는 예술―흥행 비자 제도 때문이다. 당사국 현지 업자들과 연계된 국제 인신매매 조직이 특수관광 업계와 검은 유착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민간단체들의 실태조사 결론이다. 우선 이 비자제도부터 정비하고 지속적인 단속을 하지 않고는 인권국가를 자처하는 나라의 체면이 설 수가 없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그런 비자로 일본 등에서 비슷한 피해를 당했던 과거를 상기하면 그런 제도를 둔 것부터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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