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북미 제네바 핵 합의 이후 비밀 핵개발계획을 추진해온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한반도의 안보 정세가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지난 8년간 북미관계와 한반도의 핵 안전을 담보해온 제네바 핵 합의도 사실상 실효성을 상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 계획 시인은 1993∼4년의 한반도 핵 위기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향후 한반도 정세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울 전망이다. 북미 관계가 악화하는 것은 물론 이 달 말 수교 협상을 앞둔 북일 관계나 남북관계에도 냉기류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또 제네바 합의에 따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진행 중인 대북 경수로 사업도 중대한 기로에 놓이게 됐다.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관계국들이 제네바 합의를 대체할 새로운 틀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현재로선 북한과 미국측이 모두 대화를 통한 해결 방침을 밝히고 있어 당분간은 군사적 긴장고조보다는 외교적인 해결이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미 양측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미국측은 "북한이 비밀 핵 개발 계획을 중단하고 제거해야만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밝혀 핵 문제 해결 이전에 협상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반면 북한측은 이 달 초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의 회담에서 경제 제재 조치 등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철회를 전제로 핵·미사일·재래식 전력 등 안보관심사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일괄타결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정부의 입장도 선 핵 문제 해결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당국자는 "기존 대북 현안 해결에 앞서 무조건적으로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 개발의 중단선언과 전면폐기 후 검증 등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은 19일 예정대로 장관급회담을 추진하지만 그 동안 대북지원이 핵 동결을 전제로 한 점을 감안하면 햇볕정책이 중대 시련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핵개발을 공표하고 협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은 긍정적 측면"이라고 말했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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