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우라늄 농축 핵 프로그램 개발 및 제네바 핵 합의 무효화 선언에 대해 미국 정부는 한마디로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제임스 켈리 대북 특사가 5일 평양에서 북한측의 입장을 확인한 뒤 11일 동안 미국 정부 내부의 의견 조정 및 한국·일본 정부와의 사전 협의 절차를 거친 때문인지 16일 밤 발표된 국무부의 성명은 다소 순화된 표현을 담고 있다. 하지만 미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과 급히 발표된 성명의 행간에는 1994년 제네바 핵 합의에도 불구하고 수년 전부터 핵개발 프로그램을 가동해 온 북한의 대담하고 무모한 행동에 대한 놀라움과 당혹감이 짙게 배어 있다.미국의 충격은 곧 제네바 핵 합의 등 그동안 북미 관계를 지탱해 온 기본틀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북한에 대한 강력한 대응조치가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이 핵 합의를 스스로 박차고, 핵확산금지조약(NPT), 국제원자력기구(IAEA)합의, 남북 한반도 비핵화선언 등 국제사회의 약속을 위반한 이상 미국도 상호주의의 제약에서 벗어나 대북한 제재의 채찍을 들 여지가 그만큼 커졌다.
당장 경수로 건설 사업 지원 중단, 매년 지급하는 중유 공급 및 식량원조 중단, 북한에 대한 대외무역제재 등 미국이 북한을 옥죄기 위해 이용할 카드는 많다. 게다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근 새 국가안보정책을 발표하면서 북한을 지목,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국가에 대한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거론한 점을 감안하면 한반도에 1994년 당시와 같은 북한 핵 위기가 재연되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북미관계는 상당기간 더 꽁꽁 얼어붙을 전망이다. 국무부 성명은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의 대가로 준비했던 경제적·정치적 조치들을 계속 추구할 수 없다"고 밝혀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미국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것임을 선언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국이 채찍을 빼 들 여지는 크지 않다는 게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이라크 공격을 앞두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초강경 대응으로 전력이 분산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반도 상황의 파국을 바라지 않는 한국과 일본 등 우방국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국무부 성명도 "우리는 이 상황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밝혀 최소한 대 북한 대화의 끈을 놓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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