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태가 초 읽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상·하원으로부터 대 이라크 무력사용에 대한 위임을 받아 놓은 상태다. 유엔에서 미국은 최후통첩형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강도 높은 사찰 방안과 이를 거부할 시 미국의 군사 사용이 가능한 결의안 도출을 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개별국가들과의 협상과 설득을 통해 의견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초기 이라크에게 사찰 요구조건의 수용 기회를 주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무력제재 등에 관한 제2의 결의안을 주장했던 프랑스는 이 결의안을 원치 않는 미국과 새로운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러시아는 후세인 축출 이후 러시아의 경제이익 보장으로 제2차 결의안의 지지에서 한 발짝 물러난 듯하다. 중국 역시 다른 국가들과 미국을 설득하려 하지만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훼손을 원치 않는 입장이다.
대량살상무기 사찰의 명분 하에 후세인 정권 타도를 추구하고 있는 미국과 대량살상무기 사찰에 국한하려는 여타 국가와의 끈질긴 협상은 다자의 탈을 쓰고 단독적 군사 개입을 원하는 미국쪽 입장이 강화하는 선에서 끝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미국의 집요한 후세인 축출 전략은 미국 외교의 균형을 깨고 있다. 최근 멕시코는 미국과의 현안 문제가 9·11테러 사태 이후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 바 있다. 미국과 북한 관계도 여기에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조짐은 미 특사 켈리의 방북에서도 이미 나타났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미국으로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으로 미국 외교노선에 혼선을 원치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켈리는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취소할 정도로 말을 아꼈다.
앞으로 이라크 사태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든 북미 관계는 큰 진전을 보일 것 같지 않다. 만약 이라크가 유엔의 결의에 승복하여 사찰을 받을 경우 그 내용은 이라크의 내부를 샅샅이 뒤지는 철저한 내부 침투적 사찰이 될 것이다. 일방적인 국제 압력과 미국의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런 사찰은 북한에 대한 핵사찰과 대량무기 및 여타 재래식 군사문제 해결에 심각한 함의를 줄 것이다. 협상 자세, 사찰의 내용과 방법 면에서 일방적이며 철저한 침투적 검증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사태가 사찰 중의 마찰이나 이라크의 사찰거부로 미국이 군사개입을 할 경우 북미 관계는 미국의 이라크 집중으로 인해 진전이 없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군사개입 역시 미국의 입장을 강경 노선으로 선회 시킬 가능성이 있어 협상을 통한 북한 문제 해결 전망은 더욱 어두워 질 것이다. 나아가 미국이 이라크 전쟁 후 후세인을 축출하고 새로운 인물을 내세울 경우 악의 축의 화신으로 여겨진 김정일 정권을 대하는 미국의 자세가 이전과 같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압도적 우위를 점하게 될 미국의 입장은 북미 관계 협상에 큰 도움을 줄 것 같지 않다.
다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후 이라크 사태가 예상을 뒤엎고 점점 어려운 사태에 직면할 경우, 미국 내 강경론자들의 입장이 어렵게 되면 온건파의 목소리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미국의 대북 자세에 변화가 올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어느 상황이 전개되든 공통점은 단시일 내 이라크 사태가 종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며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의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또한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라크 사태 해결 과정과 결과가 직간접적으로 미국의 북한 문제 접근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이 이라크에 매달리는 동안 우리는 지속적인 대미 설득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관련국들과 양자적, 또는 다자적 접촉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해결방식의 대 북한 함의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 특히 남북 관계에서도 각종 채널을 통해 가능한 군사, 안보 문제를 타진해야 한다.
/하용출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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