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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국어오용 감시기구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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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국어오용 감시기구 만들자

입력
2002.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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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한글날이 지나갔다. 마치 습관처럼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잊혀졌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되돌리는 것, 거리 간판의 정화, 어렵기만 한 갖가지 전문용어의 순화 문제 등등. 영어 만능의 사회 분위기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모처럼 힘을 얻고, 감초처럼 한글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목소리도 빠지지 않았다. 올해 새로 등장한 사안이라면 몇 해 전부터 거론된 바 있던 통신 언어의 정화 문제 정도였다. 시민 단체인 한글문화연대에서 버스 광고를 이용해 통신 언어 바로 쓰기 운동을 펼친다는 소식도 들린다.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이므로 어느 정도 표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극단으로 치닫는 통신 언어를 바로 잡아 파괴된 우리말을 되살리려는 데 시비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일부러 틀리게 쓴 것들은 보는 사람에게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법이다.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그 표현이 틀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의 언어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쓰는 사람은 맞게 쓴다고 썼지만 실제로는 틀렸거나 어색한 표현들이다. 거리의 간판이나 현수막, 식당의 차림표, 신문이나 전단지의 광고에서 그런 사례들을 무수히 찾을 수 있다. 설렁탕과 설농탕, 얼음과 어름, 육개장과 육계장, 심지어 육게장으로 씌어진 것까지 볼 수 있다.

단지 맞춤법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공공 기관의 캠페인에서조차 버젓이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들이 난무한다. 하나의 예로 한국담배인삼공사의 버스 광고 가운데 '우리는 지금 담배가 아니라 꿈을 키워야 할 나이입니다'가 있다. 담배를 키우는 청소년이라니 혹시 담배 농가의 자녀들을 얘기하는 것일까? 어느 경찰서에서 찻길 한 복판의 화단에 세워 놓은 '안전은 행복 방심은 사고'라는 표어도 마찬가지이다. 안전과 방심, 행복과 사고가 서로 적절한 대구(對句)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공공 기관이 전시해 놓은 이런 표현들을 매일 접하는 청소년들은 그것이 맞는 표현인 줄 알게 될 것이다. 학기마다 받아 보는 학생들의 과제물에는 이처럼 맞춤법은 맞지만 어법이 잘못된 문장들이 가득 들어 있다.

공공 기관에서 우리말을 잘못 사용하면 이들 기관이 지닌 공적 권위 때문에 보는 사람에게 더욱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공 기관들이 별 생각 없이 저지르는 우리 말 오용을 바로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 지식을 갖추지 못한 공무원들에게 바른 표현을 쓰라고 아무리 강조해 보아야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공 기관의 국어 사용을 감시할 기구를 하나 만들 것을 제안한다. 앞으로 일반 국민들이 볼 서류나 게시물은 반드시 사전 심의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어렵기만 한 법원의 판결문도 이 기구의 도움을 받는다면 지금처럼 이해가 안 돼 국민들의 불만을 사는 일은 없으리라.

이 기구의 활동으로 공공 기관의 언어가 어느 정도 바로잡히면 한 걸음 더 나아가 거리의 간판이나 현수막에까지 손을 대 보도록 하자. 지금도 간판의 색상이나 규격을 꼼꼼히 규제하고 있으니 우리말을 가꾸기 위해 규제를 하나 덧붙인다고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누네띠네', '더난식품' 등과 같이 우리말을 참신하게 활용하는 것마저 가로막지는 않도록 국어학자 뿐 아니라 시인이나 사회과학 전공자들까지 이 기구에 참여 시키도록 하자. 더불어 궁금한 점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전자우편 등을 이용해 쉽게 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소중한 우리말을 아름답게 보존하려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강제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내년 한글날을 또 한 번의 의미 없는 연례 행사들로 흘려 보내지 않으려면 지금은 무엇보다도 행동을 해야 할 때이다.

정 준 영 동덕여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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