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知天命)을 넘긴 한대수(54)가 노래한다. 반 백의 머리칼을 단발로 드리운 채. 절규인지 노래인지 알 수 없는 음들을 토해낸다. 장년의 나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는 집에서 종종 상반신을 드러내고 지낸다.30대 이상이라면 한대수의 인생 역정을 웬만큼 알고 있다. 미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돌아와 1970년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한국 최초의 히피. '행복의 나라로' '물 좀 주소' 등을 만들고 부른 포크 싱어 송 라이터. 유신 정권으로부터 쫓겨나듯 한국을 떠났고, 97년 일본 후쿠오카 라이브 음반발매를 계기로 돌아온 자유주의자. 그는 현재 부인과 뉴욕에서 살고 있다.
한대수는 어떤 생각, 어떤 느낌을 가지고 살아왔을까. '다큐멘터리 한대수' (감독 이천우 장지욱)는 그 궁금증을 채워주는 디지털 영화다. 2000년 7월부터 2001년 6월까지 세 차례 고국을 찾은 한대수가 주인공이자 화자다. 자신의 노래가 찢겨져 나갔을 때, 군에 끌려가 3년 동안 뭇매를 견디다 돌아와서는 결국 노래를 그만두고 나라를 떠났을 때,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했던 첫번째 부인을 만나고 헤어졌을 때에 대해 그는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다큐멘터리의 무게 중심은 과거보다 현재에 놓여 있다. 그의 옛 노래와 최근 노래가 깔리면서 동료 후배들과의 합동 공연, DJ와의 방송 녹음, 인터뷰,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가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헤매는 장면과 자신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부인 옥사나와의 키스 장면 등을 가감없이 담았다.
남과 다른 인생을 살았기에 별날 것이라고 짐작을 하면서도 그런 한대수를 80분 동안 엿보는 일은 낯설다. 약간 거북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입을 많이 열수록, 그의 일상을 많이 들여다볼수록 낯설음은 호기심으로, 다시 호감으로 바뀐다. 그의 사고가 진정 자유롭다는 것을, 고난한 젊은 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래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대수를 잘 알지 못하는 세대들을 위해서 좀 더 다큐멘터리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린 아이 같은 늙은 얼굴에서 아주 잠깐씩 과거의 그늘이 보인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만의 자만일까, 아니면 그냥 지금 그대로 보아달라는 한대수의 바람을 저버리는 일일까. 서울 동숭동에 있는 하이퍼텍 나다에서 또 다른 디지털 독립영화 '뽀삐'(감독 김지현)와 함께 18일부터 상영한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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