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도 하고 팩스도 보내면 복사기일까, 팩스기일까. 마우스 패드에 계산기를 달면 계산기인가, 마우스인가. 여러 기능을 접목한 퓨전 제품이 늘면서 업계가 품목 분류에 애를 먹고 있다. 특히 수입 제품의 경우는 품목마다 관세가 달라 업계와 관세 당국간 마찰도 빚어진다.출입문에 사용되는 지문인식 도어락은 잠금장치로 보면 관세가 8%. 그러나 정보기술(IT) 제품으로 간주하면 관세율 제로(0%)다. 노트북에 들어가는 스피커 중 저주파 대역은 IT제품이라서 관세가 없지만, 고주파 대역은 기타품목에 해당돼 8%가 붙는다. 관세청은 마찰을 피하기 위해 사전심사제를 두어 품목분류에 신중을 기하고 있지만, 업체들은 매년 400∼500건의 이의신청을 하고 있다. 주무부서인 관세청 품목분류과는 "제품의 기능, 원리, 용도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품목을 나누지만, 기술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고, 전문지식까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확한 분류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세무 당국과 업계간 의견충돌이 심한 분야는 IT 관련 제품. 지난해 1월 세계 20여개 국가가 IT제품에 서로 관세를 매기지 않는 정보기술협정(ITA)을 맺으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업계는 문제의 품목을 관세율 0%인 IT제품으로 신고하려 하고, 세관측은 품목 성격이 애매할 경우 기타품목으로 간주해 3∼8%의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에선 이 같은 시각차로 인한 세무분쟁이 수 백건에 달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웨이퍼를 이동시켜주는 자동이송장치는 IT제품으로 간주되다 작년 5월부터 관세 8%의 기타품목으로 변경됐다. 반도체협회는 "문제 품목들을 관세사와 검토해 IT품목으로 신고했으나, 관세당국은 이를 고의적 탈루로 보고 가산세까지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들어 8월까지 관세청의 탈루세 추징액 1,600억원 가운데 이처럼 품목분류와 세번(稅番) 적용 오류로 인한 추징액은 200억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무역협회는 "응용범위가 넓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품목간 경계가 없어지는 추세"라며 "이에 따른 세번 적용오류에 대해 세무 당국이 벌금 성격의 가산세까지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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