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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大에 기증 亞太재단/싱크탱크… "제2權府"… 쇠락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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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大에 기증 亞太재단/싱크탱크… "제2權府"… 쇠락의 길

입력
2002.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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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가 아태평화재단을 기증받기로 함으로써 그 동안 숱한 얘기를 만들어 냈던 아태재단이 무대에서 퇴장하게 됐다. 아태재단의 영욕은 곧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영욕이다. 김 대통령이 강했을 때 아태재단도 강했고, 김 대통령의 힘이 빠지면서 재단도 쇠락했다.김 대통령은 14대 대선 패배 후 정계에서 은퇴해 있던 1994년에 재단을 설립,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한반도 평화통일, 아시아 민주화 등의 순수 학술적인 목표를 내걸었다. 재원은 DJ부부가 기부한 재산과 후원회원들의 후원금이었다.

그러나 이런 순수성은 95년 DJ가 정계에 복귀,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급격히 퇴색했다. 재단은 DJ의 정치적 싱크 탱크로 인식됐고 실제로 다수의 재단 관계자들이 96년 총선과 97년 대선 때 DJ캠프에 직접 참여했다. 집권 후에는 요직에 재단 출신들이 골고루 포진해 "DJ권력은 아태재단에서 나온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DJ가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는 둘째 아들 홍업(弘業)씨가 부이사장, 집사격인 이수동(李守東)씨가 상임이사를 맡아 재단을 이끌었다.

아태재단은 DJ 집권 직후에 지방 및 해외조직 신설을 추진하는 등 세 확장을 시도했다. '아태평화아카데미'라는 산하 기구에서 정치지망생들을 교육, 양산해 내자 야당은 'DJ 정치사관학교'라며 비판했다. 야당은 DJ 집권 초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단의 후원금 등을 문제 삼았다.

아태재단의 본격적인 수난은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 수 십 억 원대의 신축 건물이 문제가 되더니 2월에는 이수동 이사가 '이용호(李容湖)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정치적, 사법적인 도마에 올랐다. 이씨 집에서 권력기관 인사서류와 언론대책 문건 등이 발견되자, 야당은 '또 하나의 권부(權府)'라고 치고 나오는 등 정치권은 아태재단의 '국정 개입'논란으로 시끄러웠다.

특검 수사를 통해 김홍업씨 친구 김성환(金盛煥)씨의 차명계좌가 발견되면서 시작된 김홍업씨 비리 수사는 아태재단 몰락을 가져 온 결정적 요인. 재단은 수사 도중인 4월에 스스로 잠정 폐쇄 결정을 내리며 서둘러 차단막을 쳤다. 하지만 여당인 민주당에서조차 '폐쇄''사회 환원'요구가 빗발치는 등 화난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대학 기부라는 결정이 내려져야 했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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