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 폭탄 테러가 이라크로 테러 전선을 확대하고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과연 기회로 작용할 것인가.발리 테러는 표면적으로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전쟁 수행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절호의 기회로 다가왔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와 알 카에다의 동시 소탕전을 선언하는 등 발리 테러의 배후 조직에 대한 응징이 이라크 개전의 명분이라는 등식으로 밀고 나갈 분위기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와 노력은 테러 충격이 가라앉으면서 미국 주도로 진행된 테러와의 전쟁 실패 책임과 이라크와의 전쟁이 더 큰 화를 자초할 것이라는 우려 등 역풍에 직면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15일 "발리 폭탄 테러는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 미국의 노력이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면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에 몰두하느라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주된 목표물을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전쟁이 가져올 위험성에 대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한 목소리를 냈다. 시라크 대통령은 16일 베이루트 방문에 앞서 레바논 일간지 로리앙 르 주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라크 공격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 명명한 것에 대한 반동을 부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미 민주당의 밥 그래험 상원의원은 워싱턴 포스트 13일자 기고를 통해 "발리 테러사건으로 부시 행정부가 보다 더 큰 위험을 외면한 채 국가적 최우선 과제를 위험한 방식으로 왜곡하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 계획을 천명하고 의회가 이를 승인한 지금의 미국 상황을 2차 대전 당시와 비교한다면 연합국이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아닌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게 선전포고를 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인의 피부에 와 닿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이라크가 아니라 끝을 알 수 없는 경제난과 무차별 저격 살인 사건의 공포에 있다는 점도 부시 대통령을 점점 더 곤궁으로 몰아넣고 있다. LA타임스는 15일 '부시, 카터를 보고 배워라'라는 칼럼을 통해 "일반 미국인들은 워싱턴 일대의 연쇄 살인사건과 증시 침체,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소재 파악 실패 등을 걱정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부시 대통령은 부적절하고 지엽적 사안인 이라크 응징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리 테러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의 반전 여론은 여전히 부시 대통령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이라크 관련 결의안을 논의하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프랑스, 중국, 러시아는 부시 대통령의 일방적인 군사행동 방침에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장-피에르 라파랭 프랑스 총리는 미국이 힘에 의한 해결 유혹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무력 개입은 가장 마지막에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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